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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과 현존 - 6월 첫번째 주간

글쓴이 : 애쉬번한인교회 날짜 : 2019-06-01 (토) 23:57 조회 : 49

63() – 사도행전 16:16-34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바울은 2차 선교여행을 하는 중에 계획과 달리 마케도니아로 건너가서 빌립보에 다다르게 됩니다. 거기서 그는 루디아라는 유대인 여성 사업가를 만나 예수를 전하고, 복음을 받아들인 루디아는 바울을 일생동안 물질적으로 후원하는 소중한 후견인이 됩니다. 루디아의 전적인 헌신으로 빌립보 교회가 세워지고 바울은 그 곳에서 능력있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빌립보에서 추방 당하게 되는데, 본문은 그 배경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점을 쳐서 주인에게 돈벌이를 해주는 여종 한 사람을 고쳐준 후에 바울은 붙들려서 감옥에 갇힙니다. 어느날 밤 지진이 일어나서 감옥 문이 열렸는데 바울은 도망가지 않았고, 그것에 감동을 받은 간수가 삶의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살다가 생의 근본에 대한 질문을 갖게 되는 일은 얼마나 복된 일인지요? 그것은 새로운 인생의 문을 열어줍니다. 그는 묻습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이 질문은 그를 구원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묵상 : 생의 근본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한 적이 있는지 생각해 보자.                           

기도 : “주여,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관상 : 말과 생각을 그치고 침묵 속에서 하나님을 응시하며 잠시 머물러 있자.




64() – 시편 묵상 / 시편 97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악을 미워하여라.”

 

   사회가 정의롭지 못하고 권력이 불의할 때 기독교인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불의에 항거하거나  정의를 위해 싸우는 것은 운동권에게 맡겨야 할까요? 우리가 나서는 것은 신앙을 정치화 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조용히 국가와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나 하면 될까요? 우리나라는 근대화 과정을 지나는 동안 독재 권력의 엄청난 불의를 경험했지만, 이 시절 한국 교회는 대부분 침묵하거나 정의롭지 못한 권력에 항거하는 일을 불온한 일로 치부했습니다.  

 

   성경은 결코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바로를 향해 강력하게 투쟁했던 모세, 불의한 이스라엘의 왕들과 타협하지 않고 저항했던 무수한 예언자들, 정의가 곧 하나님의 뜻이라 가르쳤던 지혜자들, 이들의 정신이 곧  구약 신앙의 뿌리입니다. 신앙을 정치화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나 삶을 왜곡시키고 생명을 위협하는 나쁜 힘()과 싸우는 것은 정치 어젠다가 아니라 복음 어젠다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악을 미워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묵상 : 불의와 악 앞에서 침묵했던 적이 있는지 생각해 보자.                               

기도 : “주여, 주님을 사랑함으로 악을 미워하게 하옵소서.” 

관상 : 말과 생각을 그치고 침묵 속에서 하나님을 응시하며 잠시 머물러 있자.

 

 


65() – 서신 묵상 / 요한계시록 22:12-21

 

나는 알파며 오메가, 곧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시작이며 끝이다.”

 

   자의식이 빠르게 성장하던 청소년 시절에 저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한동안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생각할 수록 나라는 존재가 낯설었습니다. 나는 엄청난 존재였습니다. 세상과 우주가 온통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내 시선 외에 다른 시선으로는 세상을 바라볼 수가 없습니다. 다른 한편 나는 너무 초라했습니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존재, 내 과거도 내 의도로 만든 것이 아니며, 내 미래도 한치 앞을 알 수 없습니다.

 

   저는 이 부조화에 당황했습니다. 어떻게 나라는 존재가 고귀하면서 동시에 불안할 수 있을까? 나중에서야  이것이 인간에 대한 가장 정직한 정의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고귀하지만 불안한 존재! 우리는 실로 그런 존재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불안이 우리의 고귀함을  갉아 먹는다는데 있습니다. 불안의 문제를 꼭 해결해야 합니다. 불안은 나라는 존재의 첫 설계자이며 마지막 완성자이신 분과의 단절에서 옵니다. 내 삶과 존재의 처음이요 마지막, 시작과 끝이신 그분께 돌아갑시다.   

 

묵상 : 나는 누구인가? 눈을 감고 가만히 생각해보자.                                   

기도 : “내 존재의 처음이며 마지막, 시작과 끝이신 분과 함께 살게 하소서.” 

관상 : 말과 생각을 그치고 침묵 속에서 하나님을 응시하며 잠시 머물러 있자.

 

 


66() – 복음 묵상 / 요한복음 17:20-26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 ”

 

   요한복음에 의하면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체포되시기 전 마지막 기도였습니다. 그 기도의 내용은 간절한  것일 뿐 아니라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슴 속에 담긴 우리를 향한 절절한 소망이 담겨 있으며,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잘 드러내 보여줍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우리도 그렇게 되기를 소망하셨던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목적은 내 안에 주님이, 주님 안에 내가 거하는 삶입니다.

 

   그러나 이와같은 신앙은 이상일뿐 현실로는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한 은총을 입은 사람들이나 영적으로 깊은 차원에 있는 사람들에게나 해당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옳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마지막 기도를 통해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이 자신과 같은 은혜를 경험하기를 바라셨습니다. 내 안에 주님을 모시고 사는 삶, 주님 안에 내가 거하는 삶, 절대 포기하지 맙시다.

 

묵상 : 내 안에 주님을 모셨는가? 주님 안에 내가 거하고 있는가?                               

기도 : “주님, 내 안에 주님을 모시고, 주님 안에 내가 거하며 살게 하소서.”

관상 : 말과 생각을 그치고 침묵 속에서 하나님을 응시하며 잠시 머물러 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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