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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과 현존 - 6월 두번째 주간

글쓴이 : 애쉬번한인교회 날짜 : 2019-06-10 (월) 12:53 조회 : 50

610() – 사도행전 2:1-12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어서, 각각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어릴 적에 다니던 교회는 좀 뜨거운교회였습니다. 일년에 네차례 가량 부흥회를 했고, 금요일 저녁마다 철야 기도회로 모였습니다. 뜨겁게 찬양하고 기도하고, 여기저기 방언을 하고, 간간히 기적도 일어났습니다.  성령충만을 끊임없이 강조했고 어렸지만 저도 이때 방언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목회자는 존경받지 못했고, 교인들은 나눠져 있었으며,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저는 신학교 들어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교회를 떠났습니다. 

 

   그 교회는 성령충만의 겉 옷만 입은 것임을 나중에서야 깨달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성령충만의 기원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이 사건의 본질은 각기 다른 말(방언)로 말하는 현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말을 구사하는데도 서로의 말을 알아듣는 현상에 있습니다. 말하자면 서로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거룩한 의사소통 현상이 일어난 것입니다. 진정한 성령충만은 이런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는 성령충만 합니까? 

 

묵상 : 성령으로 충만했던 적이 있는가? 그때 어떤 열매를 맺었는가?                            

기도 : “성령충만하여 우리 안에 거룩한 의사소통이 일어나게 하소서.”     

관상 : 말과 생각을 그치고 침묵 속에서 하나님을 응시하며 잠시 머물러 있자.




611() – 시편 묵상 / 시편 104:24-35

 

주님께서 주님의 영()을 불어 넣으시면, 그들이 다시 창조됩니다.”

 

   사람은 저마다 한계, 부족함, 연약함, 상처를 가지고 있고, 가능하면 자신의 부끄러운 부분을 감추고 싶어  합니다. 자기 안의 부끄러움을 감추려는 성향이 내성적인 성격을 형성하기도 하고, 조금만 자존심이 상해도 불같이 화를 내는 성격을 만들기도 합니다. 부끄러움과 비참함이 자아를 완전히 짖누르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자신의 죄’(부족함, 연약함, 한계, 상처, 부끄러움)의 문제 앞에서 너무나 허약하고 서투릅니다. 

 

   오늘 시편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의 주인됨’(Lordship)을 노래합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을 마치 어린아이의 눈으로 보듯 묘사하고 있어서 그 표현들이 순진하고 맑게 느껴집니다. 그 가운데 주님께서 주님의 영을 불어넣으시면 우리는 다시 창조된다는 말씀은 죄의 문제의 근본 해결책을 보여줍니다.  우리를 지으신 분이 다시 우리를 창조 하셔야만 죄와 상처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영이 우리 안에 다시 불어 넣어져야 합니다.     

 

묵상 : 나는 내 안의 부족함과 연약함과 상처를 어떻게 다스리는가?                                

기도 : “주여, 주님의 영을 불어넣으시어 우리를 다시 창조하소서.” 

관상 : 말과 생각을 그치고 침묵 속에서 하나님을 응시하며 잠시 머물러 있자.

 

 


612() – 서신 묵상 / 로마서 8:14-17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누구나 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한 평생을 열심히 살아갑니다. 그들의 삶은 성공하려는 욕망의 인도함을 받는 삶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명예를 얻기 위해 온갖 어려움을 견디며 피나는 노력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출세를 향한 욕망의 인도함을 받는 삶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가족을 위해 모진 수고와 희생을 아끼지 않습니다. ‘가족을 부양하려는 목적이 그의 삶을 인도합니다.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인생을 사는 목적일까요? 

 

   뭔가를 이루려는 꿈과 욕망은 인간의 진보에 큰 도움을 줍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삶의 목적이 있음을 잊게 합니다. 우리는 성공하고 출세하고 생존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자녀로써 자유와 기쁨을 누리며 사는 것이 우리 삶의 목적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입니다. 무엇이 당신의 삶을 인도합니까?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길 바랍니다.   

 

묵상 : 무엇이 당신의 삶을 이끌어 가고 있는가?                                     

기도 : “주여,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이 되게하소서.” 

관상 : 말과 생각을 그치고 침묵 속에서 하나님을 응시하며 잠시 머물러 있자.

 

 


613() – 복음 묵상 / 요한복음 14:8-17

 

너희가 무엇이든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

 

   오늘 말씀은 대단히 낙관적입니다. 무엇이든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다 이루어 주겠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경험하듯 아뢰는대로 다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구하지 않아서 일까요? 예수님의 이름을 제대로 부르지 않아서 일까요? 잘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의 의도를 달리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구하는대로 다 들어주겠다는 문자적 의미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것을 아뢰지만, 그것이 주님이 이루어 주시려는 것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바램이 우리에게 유익하지 않을 때 주님은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그 응답하지 않으심은 사랑 깊은 응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보다 더 나를 잘 아시는 주님은 내가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게 가장 좋은 것을 주기를 원하십니다. ‘내 이름으로 구하면이라는 조건은 주님 안에 머물면이라는 뜻입니다. 주님이 내 안에 있다면 모든 것이 응답입니다.    

 

묵상 : 응답받지 못했으나 그것이 곧 사랑의 응답이었던 경험을 생각해보자.                                  

기도 :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길 원하시는 주님을 신뢰하게 하소서.”

관상 : 말과 생각을 그치고 침묵 속에서 하나님을 응시하며 잠시 머물러 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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