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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과 현존 - 6월 네번째 주간

글쓴이 : 애쉬번한인교회 날짜 : 2019-06-24 (월) 01:08 조회 : 24

624() – 구약 묵상 / 잠언 8:1-4, 22-31

 

지혜가 부르고 있지 않느냐? 명철이 소리를 높이고 있지 않느냐?”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를 보면 하나님의 지혜를 알 수 있는데, 세계는 그 지혜 덕분에 존재하고 꼴을 갖추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잠언 8장은 하나님이 모든 만물을 창조하기 전에 먼저 지혜를 지으신 것으로  묘사하고 있고, 또 이 지혜를 하나의 인격체로 의인화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은 이 개념을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에 적용시킵니다. , 지혜가 창조 이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있어서 창조 사역에 깊이 관여했듯이, 그리스도께서 창조 질서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8:22-31)에서 ’(지혜)는 천지창조 전에 하나님이 데리고 계셨고, 영원 전부터 세움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만물을 지으시는 모든 과정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창조의 명공’(craftsman)으로 결정적 역할을 감당했다고 서술합니다. 그런데 앞 본문 (8:1-4)에 의하면 이 지혜가 끊임없이 우리를 부른다고 말씀합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따라서 창조의 원동력인 지혜’(예수 그리스도)에 귀기울이고 그것을 따라  사는 일은 참으로 소중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묵상 : 내가 귀기울이며 좇아 사는 지혜는 어떤 것일까?                             

기도 : “만물을 지으신 지혜에 귀기울이고, 그 부르심을 따라 살게 하소서.”     

관상 : 말과 생각을 그치고 침묵 속에서 하나님을 응시하며 잠시 머물러 있자.

 

 

 

625() – 시편 묵상 / 시편 8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생각하여 주십니까?”

 

   인생을 살다보면 내 자신이 가치 없게 느껴지는 비루하고 비참한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경험에 익숙해지면 우리는 점점 어두워지고 삶은 쉽사리 방향을 잃어 버립니다. 이런 경험을 할 때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가치를 믿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경험에 귀기울이거나 그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반대로 우리 존재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얼마나 존귀하고 복된 존재인지를 끊임없이 가르칩니다.

 

   오늘 시편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소개합니다. “주님께서 손수 만드신 저 큰 하늘, 주님께서 친히 달아 놓으신 저 달과 별을 천진하게 묘사합니다. 이어서 이 모든 하나님의 창조가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서술합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렇게까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배려와 사랑과 은혜의 손길이라고 선포합니다. 인생의 비참함을 경험하며 살지라도 우리가 얼마나 가치있는 존재인지 확신하며 살아야 합니다.  

 

묵상 : 내가 무엇이라고 이렇게까지 은혜를 베푸실까?                          

기도 : “나를 향한 하나님의 배려와 사랑과 은혜의 손길을 깨닫게 하소서.” 

관상 : 말과 생각을 그치고 침묵 속에서 하나님을 응시하며 잠시 머물러 있자.

 

 

 

626() – 서신 묵상 / 갈라디아서 3:23-29

 

여러분은 모두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 전문가로써 율법의 역할과 유용함을 누구보다 잘 알았지만, 한편 그것이 의로움 (구원)의 절대적인 도구로 사용되는 현실과 그 위험성도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의 본질을 깨닫고 난 이후부터 바울은 율법의 영적 위험성과 싸우는 일에 일생을 바쳤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예수의 복음을 아무 의미없는 것으로 만드는 결정적인 함정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이해한 복음은 무엇입니까?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예수 안에서는 차별이 없는 하나의 존귀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율법이 중요시 여기는 사람의 신분, 사람의 성취, 사람의 노력은 사실 존귀한 존재(의로운 존재)가 되는데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속하면 누구나 그분의 후손이요, 약속의 상속자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요, 이 믿음을 가진 자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묵상 : 내 믿음 안에 율법적인 요소가 있는지 생각해 보자.                                      

기도 : “주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의 상속자로 살게 하소서.” 

관상 : 말과 생각을 그치고 침묵 속에서 하나님을 응시하며 잠시 머물러 있자.

 

 

 

627() – 복음 묵상 / 누가복음 8:26-39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대답하였다. 군대입니다. ”

 

   한때 시인과 촌장의 하덕규씨가 부르는 <가시나무>라는 노래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자신의 내면을 정직하게 들여다보고 나직하게 고백하는 노랫말은 영적 구도자의 신앙고백에 다름 아닙니다. 가사의 첫 대목이 이렇습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자리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다는 고백은 절절한 공감을 일으킵니다. 우리 안에는 얼마나 많은 나로 들어차 있습니까?

 

   거라사 지방의 귀신들린 사람은 예수님 앞에서 자기 이름을 군대라고 소개합니다. 자기 안에 너무 많은 귀신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자기 안에 너무 많은 존재(자아)가 사는 증상을 정신분열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정신분열을 앓는 사람은 단지 거라사의 광인만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일종의 정신분열을 앓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너무 많은 나, , 에 사로잡혀 살기 때문입니다.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으면 주님의 쉴 자리를 마련할 수 없습니다. 

 

묵상 : 가시나무의 노래 가사를 가만히 읖조려 보자.                                    

기도 : “주여, 내 영혼 안에 주님의 쉴자리를 마련하게 하소서.”

관상 : 말과 생각을 그치고 침묵 속에서 하나님을 응시하며 잠시 머물러 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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