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le_community_03.gif
총 게시물 214건, 최근 0 건

경청과 현존 - 9월 네번째 주간

글쓴이 : 애쉬번한인교회 날짜 : 2019-09-22 (일) 10:04 조회 : 25

923() – 구약 묵상 / 예레미야 8:18-9:1

 

나의 기쁨이 사라졌다.”

 

   미래를 내다보는 예언자의 눈에 유다 백성들이 사로잡혀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가며  울부짖습니다. 주님께서 시온을 떠나셨다고, 더이상 예루살렘에는 왕이 없다고 절규합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지나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탄식합니다. 예레미야는 유다 왕국이 멸망하고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가는 장면을 예언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구경꾼처럼 건조하게 미래를 내다본 것이 아니라 자기 일처럼 가슴을 파고드는듯한 고통을 느꼈고, 그 비통한 슬픔을 노래했습니다.

 

   우상을 섬기며 헛된 삶을 살던 당대 사람들은 예레미야의 슬픔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포로로 끌려가고 나서야 깨달았겠지만 그땐 너무 늦었습니다. 아무도 슬퍼하지 않을 때 홀로 아파했던 예레미야의 슬픔은 무슨 가치를 지니고 있을까요? 예레미야의 슬픔은 당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수세기 후 혹독한 핍박의 시대를 겪었던 후손들, 고통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려는 모든 신앙인들을 위한 큰 위로와 희망이었습니다. 그의 슬픔은 고귀한 위로였습니다.  

 

묵상 : 누군가를 위해 진심으로 아파하고 슬퍼한 적이 있는지 생각해보자.                                              

기도 : “주여, 다른 사람을 위해 아파할 줄 알고 슬퍼할 줄 알게 하소서.”   

관상 : 말과 생각을 그치고 침묵 속에서 하나님을 응시하며 잠시 머물러 있자.


 

924() – 시편 묵상 / 시편 79:1-9     

 

주님, 언제까지입니까?”

 

   오늘 시편 본문은 유다 왕국의 수도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무너지고 폐허가 된 광경을 처연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유다 백성들의 주검을 새들의 먹이로 주고, 살을 들짐승에게 내어 주며, 사람들의 피가  예루살렘 온 사면에 물같이 흘러 넘치건만 죽은 사람들을 묻어 줄 사람조차 없다고 슬피 노래합니다.  예루살렘이 무너진 사건은 유다 백성들에게 한 나라, 한 도시의 멸망이라는 충격을 너머 하나님을 향한 신앙과 믿음 자체를 흔드는 일대 사건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시인은 이렇게 비참하고 슬픈 노래를 부르고 있을까요? 슬픔의 노래는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저는 이 시편을 묵상하면서 시인의 슬픔과 아픈 마음이 마치 하나님의 마음인듯 느껴졌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사랑하셔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고, 그 터 위에 다윗과 솔로몬을 통해 세운 나라였습니다. 그 땅이 더럽혀지고, 백성들의 시신이 온 나라에 쓰러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셨을까요? 오늘 시편을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다시 읽어봅시다.   

 

묵상 : 오늘 시편을 하나님의 아픈 심정을 느끼며 다시 읽어보자.                                     

기도 : “하나님, 주님의 마음을 품고 세상을 바라보게 하소서.”  

관상 : 말과 생각을 그치고 침묵 속에서 하나님을 응시하며 잠시 머물러 있자.

 

 

925() – 서신 묵상 / 디모데전서 2:1-7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얻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

 

   본문 말씀을 주의 깊게 읽다보면 바울이 무엇을 강조하려지 금방 발견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어떤 표현이 계속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먼저 바울은 모든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라(1, 2 )고 두번이나 권하고,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 원하신다(4)고 강조합니다. 또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위해 자기를 대속물로 내주셨다(6)고 설명합니다. 주님은 몇몇 사람들만 구원하시거나, 믿음 좋은 일부만을 위해 자신을 대속물로 주신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당시 교회를 혼란에 빠트린 자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영지주의자들입니다. 그들의 가장 큰 문제적 주장은  소수의 영적 지식(영지)을 가진 자들만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비밀스런의 지혜를 알 수 있으며, 선택된 일부의 사람들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 주장을 강하게 반박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잊지 맙시다. 주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과 진리를 얻기를 원하시며 모두를 위해 자신을 대속물로 내주신 분입니다.

 

묵상 : 어떤 사람들을 마치 구원받지 못할 사람들처럼 배척한 적은 없는가?                                                    

기도 : “모든 사람을 위해 자신을 대속물로 주신 주님의 마음을 알게 하소서.” 

관상 : 말과 생각을 그치고 침묵 속에서 하나님을 응시하며 잠시 머물러 있자.

 

 

926() – 복음 묵상 / 누가복음 16:1-13      

 

불의한 재물에 충실하지 못하였으면 누가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는 가장 해석하기 어려운 비유 중의 하나입니다. 비유에 등장하는 두 주인공, 부자와 청지기를 해석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부자를 하나님을 상징하는 인물로 볼 수도 있지만, 한편  고리대금 업자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렇게 보기 난감하기도 합니다. 또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을 낭비하고  미래를 위해 주인의 돈을 함부로 탕감해 주는 나쁜 사람 같은데, 한편 고리대금 업자에게 당한 사람들의 채무를 갚아주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이 비유는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불의한 재물에 충성하라는 말씀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표현의 오해를 먼저 벗어야 합니다. 불의한 재물이란 부정한 돈을 말하는게 아니라 이 세상의 돈을 뜻합니다. 충성하라는 말은 신실하라는 뜻입니다. 즉 때묻은 세상의 돈이라 해서 거짓되게 벌고 함부로 쓸 것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신실하게 벌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신실하게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묵상 : 돈과 재물을 함부로 썼던 기억이 있다면 떠올려보자.                                             

기도 : “주여, 때묻은 세상의 재물일지라도 신실하게 쓸 줄 알게 하소서.”

관상 : 말과 생각을 그치고 침묵 속에서 하나님을 응시하며 잠시 머물러 있자.


이름 패스워드
비밀글 (체크하면 글쓴이만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왼쪽의 글자를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