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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과 현존 - 10월 두번째 주간

글쓴이 : 애쉬번한인교회 날짜 : 2019-10-15 (화) 11:58 조회 : 169

1014() - 다니엘 5

 

누가 세상을 다스리는가?”  (다니엘 5:22-31)

   다니엘 4장과 5장 사이에는 긴 시간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바야흐로 바벨론 제국의 운명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다니엘도 지혜자들 사이에 전설로 남아 잊혀져 가고 있을 무렵이었습니다. 왕궁에서 귀족들의 잔치가 열리고 있을 때, 갑자기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궁중 벽에 아무도 읽을 수 없는 이상한 글씨를 써내려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다니엘서의 거듭되는 패턴이지만, 역시 바벨론의 지혜자들은 아무도 그 글씨를 해석하지 못했고, 잊혀졌던 다니엘이 다시 나타나 이 수수께끼 같은 글씨를 읽고 해석해 줍니다.

   그 글자는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으로, 하나님이 계산 하시고(메네), 저울에 달아보고(데겔), 둘로 나누기로 하셨다(우바르신)는 뜻입니다. 이것은 바벨론의 죄와 타락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계시였고, 다니엘은 이 사실을 왕 앞에서 있는 그대로 해석해 주었으며, 실제로 바벨론 제국은 곧 두 신흥 강국인 메대와 페르시아에 의해 둘로 나뉘어 멸망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찬란한 문명을 일구었던 거대한 제국도 한 순간에 풀처럼 사그라드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세상을 다스리는 분은 누구이며, 인간의 역사를 쥐고가는 분은 누구인지 질문합니다. 여러분, 그는 누구입니까?        

  

   <묵상을 위한 질문>

   1. 다니엘이 해독한 글자의 의미는 무엇이었나? (5:26-28)  

   2.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 내 삶을 붙들고 계신 분은 누구인가?   

 

   <맥 잡기>

   * 다니엘서 5장은 바벨론 제국이 무너지는 혼란한 시기를 반영하고 있다. 벨사살 왕은  느부갓네살 왕의 아들이 아니며, 이 즈음의 실제 역사 속에서 2년만에 살해된 왕은 느부갓네살의 아들인 에윌 므로닥 왕이었다. 본문은 정확한 역사의 팩트를 전하려는 의도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격랑의 역사 속에서도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쥐고 가는 손이 있으며, 세상을 다스리는 근원자가 따로 계심을 보여주려고 한다.   

 

 

 

1015() - 다니엘 6

 

네 하나님이 너를 구하여 주시리라(다니엘 6:13-24)

   다니엘서를 전편과 후편으로 나눌 때, 전편의 마지막 장에 해당하는 6장은 다니엘이 사자 굴 속에 던져졌으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아무런 상처 없이 생명을 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1장부터 계속되는 에피소드들은 내용만 조금씩 다를뿐 주인공들의 기적같은 영웅담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두고두고 유대인들의 사랑을 받은 이 이야기들 속에는 공통적인 키워드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깊은 신뢰’(믿음)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손길’(은혜)입니다. 

   어떻게 이 영웅적인 이야기들이 신앙인들의 영적 삶에 도움을 주는 거룩한 말씀이 되었을까요?  다니엘서의 첫 독자들이 누구였는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다니엘서의 배경은 주전 4세기이지만, 실제로 이 책이 쓰여진 때는 헬라제국의 종교적 박해가 극에 달했던 주전2세기 무렵입니다. 그야말로 풀무 화덕과 사자 굴에 던져지는 것과 같은 절체절명의 위협 앞에 놓여있던 신앙인들이 다니엘서의 첫 독자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다니엘과 세 친구의 이야기는 무한한 격려와 용기와 희망의 말씀이 되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신뢰’(믿음)  내려놓지 말아야 하며,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은혜)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한 영적 진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다리오 왕이 다니엘을 사자 굴에 던지도록 허락하면서도 그의 본심은 달랐다. 그의 본심은 무엇이었을까? (6:16)  

   2. 다리오 왕의 본심이 담긴 말을 적어 놓고 거듭 읽되, 그것을 성령의 속삭임으로 들어보자.       

 

   <맥 잡기>

   * 다니엘서의 저자는 주전 167년에 일어났던 <성전모독 사건>과 주전 166년의 <마카비 항쟁>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다니엘서는 본문 이야기가 전개되는 같은 시기(주전 4세기)에 쓰여진 것이 아니라, 200년이 지난 주전 2세기 무렵에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1016() – 다니엘 7

 

 

옛부터 항상 계신 분, 가장 높으신 분(다니엘 7:9-14)

   다니엘 7장은 다니엘이 목격한 네 개의 환상 가운데 첫 번째 환상을 다루고 있습니다. 매우 사납고 비현실적인 네 마리 짐승에 대한 묘사(2-8)에 이어 하늘 보좌에 앉으신 분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9-14)가 이어집니다. 이 두 묘사는 뚜렷한 대조를 이룰 뿐 아니라, 하늘 보좌에 앉으신 분에 의해서 네 마리 짐승들이 살해되거나 그 권세를 빼앗기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환상에 대한 묘사는 몽환적이고 비현실적이나 그 메시지는 뚜렷합니다. 영적 싸움에서의 최후 승리입니다.

   영적 싸움을 걸어오는 적들의 특징은 무섭고 강하며 다면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날개가 있고 사나운 몸을 가지고 있어 감히 싸울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대적은 이토록  강하고 두려운 세력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이 싸움이 옛부터 항상 계셔왔던 가장 높으신 분에게 달린 싸움이지 우리의 싸움이 아니라고 가르쳐 줍니다. 가장 높으신 분이 악한 세력과 싸울 것이고, 그들은 곧 하나님 앞에서 살해되고 그 권세를 빼앗길 것입니다. 영적 싸움은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시는 가장 높으신 분의 힘으로 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네 마리 짐승을 물리치는 분을 본문은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7:9-14, 18, 22, 27)

   2. ‘옛부터 항상 계신 분, 가장 높으신 분을 모시고 사는가? 당신 안에 그분이 계신가? 

 

   <맥잡기>

   * 7장부터 <다니엘서>의 후편이 시작된다. 이 후편 부분은 다니엘이 본 여러가지 환상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데, 후편의 출발인 7장은 전편과 후편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 특히 7장이  묘사하고 있는 다니엘의 환상은 2장에 나오는 느부갓네살의 꿈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1017() – 다니엘 8

 

세상 끝에 관한 일(다니엘 8:15-26)

   다니엘이 목격한 네 개의 환상 가운데 두번째 환상을 다루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숫양과 숫 염소의 환상을 보는데, 이 환상은 고대 중동 지역의 제국의 패권을 압축적으로 요약해 줍니다. 유다를 무너뜨린 바벨론은 메대와 바사에 의해 무너지는데, 숫 양의 두 뿔이 이 두 나라를 상징합니다. 이 두 제국(나중에 페르시아 제국으로 통일)은 헬라제국의 알렉산더에게 무너지는데, 날센 숫 염소가 헬라 제국을, 두 눈 사이의 큰 뿔이 알렉산더 대왕을 상징합니다. 이 뿔이 꺾이고 생긴 네 개의 뿔은 알렉산더 이후 헬라제국이 네 개로 나누어지는 현상을 보여줍니다.

   이 환상이 말해주는 바는 세상에서 가장 큰 권력들의 끝없는 싸움, 강한 힘 위에 더 강한 힘이 나타나 이전 권력을 무너뜨리는 역사, 이 역사의 커다란 흐름이 우연이 아니며, 그 배후에 우주와 역사와 인간의 삶을 이끌어가는 큰 손이 있음을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배후에 큰 손이 있다는 믿음은 눈 앞에 펼쳐지는 현상이나 절망적 현실에 함몰되지 않고 보다 멀리 내다보는 눈과 오래 기다릴 줄 아는 마음을 갖게 합니다. 본문이 묘사하는 환상을 묵상하되, 디테일에 사로잡하기 보다는 큰 손, 삶의 배후, 구원으로 이끌어가는 거룩한 손길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가브리엘 천사가 깊이 잠든 다니엘을 깨워 깨닫게 해주려던 핵심은 무엇이었을까? (8:23-26) 

   2. 당신은 삶의 겉만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삶의 속, 이면, 배후를 느끼며 살고 있는가?

 

   <맥잡기>

   * 다니엘서는 장르상 묵시 문학에 속한다. 묵시문학의 기능은 두 가지다. 첫째, 절망과 위기에 처한 이들을 위로하고 회복에의 희망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게 하는 측면이다. 둘째, 기존 질서에 강하게 저항하게 하고 근본적으로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갈 것을 요구한다. 이것은 의지를 가지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도록 하는 측면이다. 묵시문학은 은혜에 의존하면서도 최선의 노력을 다해 살아가는 신앙인의 조화로운 삶을 격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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