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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인생도처 유청산(人生到處 有靑山)

글쓴이 : walter 날짜 : 2016-06-19 (일) 22:55 조회 : 949

『 2016 년 6월 19일 Father's Day

古稀客(고희객)이 부르는 아버지의 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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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본관은 밀양이며 청제공파 15대 손(朴性根)이다. 농부의 아들로 30리 길을 통학하여 왜정 때 영양군 석보 보통학교를 졸업한 것이 학력의 전부다.


첫 직업은 영남좌도 영덕 원전 간이학교의 설립자 겸 교장 선생이었다. 아버지는 35세 전에 면소재지에서 농사를 주업으로 배급소와 정미소․한지(닥종이)공장․한약재상․목재상․곡물상을 경영할 만큼 개화물결에 빨리 적응한 활동가다. 아버지는 이 범주를 일생의 가업으로 삼았다. 할머니, 할아버지 출가전인 고모 다섯, 대가솔(大家率)과 4촌 6촌을 망라한 온 집안의 구심점 노릇을 했다. 자가 생산한 韓紙(한지)를 목탄차(木炭車)에 가득 싣고 만주까지 가서 사업을 했다. 면내(面內)에서는 일등 부자란 말을 들었다는 게 아버지의 자랑이었다.


일본 신사유람 때 스프링 코트를 팔에 걸치고 스택(지팡이)을 잡고 공원의 사슴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은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는 멋 쟁이었다. 멋진 고급 손가방 하나를 꼭 들고 여행을 다녔는데 내 기억으로는 적어도 7-8회 이상 그 가방 옆구리를 소매치기에게 칼질을 당했다. 그 때마다 깁고 또 기워 누더기가 되었지만 모양이 좋다고 그 가방만 들고 다녔다. 나의 ‘뽄(Form) 생 뽄 사’는 아버지의 것이다.

아버지는 나에게 ‘인생도처 유청산,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란 교훈과 고도(高度)의 자존심, 다재다능 이란 정신적 유산을 남겼다. 자존심은 무엇보다 소중한 자산이었다. 내게 자존심이 없었다면 현실생활과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여 그럭저럭 이보다 더 못난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수신제가.... 는 세상이 다 아는 말이나 그 교훈에 대해서는 나도 아버지도 실패자다. ‘인생도처 유청산’의 포괄적 뜻은 “생소하고 경험이 없더라도 일단 부디 쳐서 열심히 살면 어디에 가서도 살길이 열린다.” 이를테면 “강력한 개척자 정신을 가져라.”는 의미다. 나는 귀가 따갑도록 들었고 또 그렇게 살려고 노력했던 충실한 실천자이었다. 나는 도전의식과 적극성에 관한 한 과(過)했다. 아버지 역시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인생행로이었다.


아버지 어머니는 금슬부조(琴瑟不調)의 부부이었다. 그로 인해서 당신들의 생애는 물론 자식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지만 그 문제, 본질적 성격차이와 교육, 경험의 낙차(落差)에서 오는 갈등은 어지간한 작심으로는 해소하기 어렵다.


아버지는 바지저고리 차림에서 양복을 입은 신식 신사로 신속하게 옮겨갔으나 어머니는 한복에 머리에 꼽은 비녀를 평생토록 빼지 않고 지낸 조선조, 구(舊) 한말(韓末)여인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여러 측면에서 서로 어울리지 않는 동반자이었다. 성격적으로도 어머니는 움직이지 않는 산이었고, 아버지는 쉴 세 없이 암석에 철썩거리며 부딪치는 파도 같은 성격이었다. 궁합이란 게 있다면 철저하게 맞지 않는 부부이었다.


아버지는 1978년, 70 나이를 넘기고 미국에 와서 여러 도시를 돌아보고 “이런 넓은 세상에 10년만 먼저 왔더라면... 좀더 젊어서 왔더라면 나도 큰일을 할 수 있을 것인데....” 여러 번 긴 한숨을 쉬며 당신이 속절없이 늙었음을 한탄했다. 만족하지 못한 당신 일생의 분한(憤恨)을 삼키며 워싱턴에서 몇 년 외롭게 살다가 돌아갔다. 영사관의 협조를 얻어 대한 항공편으로 시신을 모국으로 운구(運柩)하여 어머니와 큰형이 먼저 묻힌 고향 땅 외진 산자락에 영원한 자리를 잡았다.


형제들 중에 아버지를 따라갈 만 한 자식은 단언컨대 아무도 없다. 아니, 아들 딸 다 합쳐도 아버지의 중량을 못 미친다. 스스로 집안을 일으켜 세우고 아들딸 빠짐없이 도회지로 내보내 최소한 고등교육까지는 받게 했다. 해방 전후와 전란 중의 사회혼란기에 농촌에서 도회지에 나가 중․고등학교 교복을 입을 수 있도록 자식들에게 길을 열어준 것은 대단한 특전, 특혜다.


나의 초등학교시절에 아버지는 사친회(기성회) 회장 6년 연임이었다. 나는 어깨를 쫙 펴고 학교를 다녔다. 졸업식, 운동회, 8.15 기념식 같은 큰 행사가 있을 때는 항상 교장 선생님과 나란히 본부석, 단상에 앉았고, 아버지의 내빈 축사도 들었다. 나의 초등학교 졸업사진에도 아버지께서 교장선생님 옆자리에 앉아 있다. 그것 하나 만으로도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나는 아버지께 사무치게 감사한다. 엎드려 절한다. 부모의 은혜를 배신한 죄, 사죄할 길이 없어 한스럽다. ◘


강현식 2016-06-20 (월) 11:27
사진이 어쩜 저렇게 선명한지요. 사진 속에서 알지도 못하는 그 시절의 정서가 훅하고 달려드는 것 같습니다. 또 짧은 글을 통해서 아버님의 생애를 단번에 들여다 본듯 합니다. 아버지의 날, 이래저래 가슴 먹먹한 날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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