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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강해 (1) - 사람의 빛

글쓴이 : admin 날짜 : 2017-09-25 (월) 04:23 조회 : 134

요한복음 강해 (1)


사람의 빛 The Light of Man”


요한 1:1-5 / 20179 17

 


   들어가는 말

   오늘부터 요한복음 강해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강해 설교는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설교지만 성경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고, 둘째는 본문을 연결해서 다루기 때문에 연속성을 가지고 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째는 그러면서도 그날 본문에 담긴 개별 메시지를  독립적으로 묵상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번 강해 설교를 통해서 요한복음 전체를 이해하고, 요한복음의 연속적인 메시지와 독립적인 메시지를 함께 묵상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오늘은 첫 시간으로 요한 복음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 요한복음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고,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간단히 살펴보고나서, 요한복음의 서문이라고 할 수 있는 오늘 본문에 담긴 메시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저자에 대하여

   먼저 요한복음은 누가 썼을까요? 당연히 요한이겠지요. 마태복음은 마태가, 누가복음은 누가가 썼겠지요. 그런데 공관복음서에는 본문에 그 사람이 저자라는 사실을 언급한 부분이 없습니다. 예를들면 마태복음에는 마태가 저자라는 언급이 없고, 마가복음도 누가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면 요한복음의 마지막 장에는 “이 모든 일을 증언하고 기록한 사람이 바로 이 제자다.(21:24) 라는 귀절이 있습니다. 이 제자는 요한복음 안에서 거듭 등장하고 있는 ‘예수가 사랑하시는 제자’를 말합니다. 그는 전통적으로 예수님의 제자였던 사도 요한(세례 요한과는 다른 인물)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사도 요한이 썼을 것이라고 믿어왔습니다.

   그러나 몇가지 이유로 인해서 사도 요한이 이 복음서를 직접 기록했을 가능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나이 문제(요한복음은 가장 후대에 기록됨), 둘째는 유려한 헬라어  문체(사도요한은 어부 출신임), 세째는 저자 스스로 자신을 예수께서 가장 사랑했던 제자라고 부를 가능성이 낮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신약성경이 쓰여진 시대의 관례를 따른다면, 요한복음은  사도요한에게 지대한 영항을 받은 제자 중의 한 사람이나 제자 그룹이 써서 스승인 사도요한에게 헌정한 것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요한복음을 썼다고 해도, 사도 요한의 가르침과 영향력이  그대로 담긴 복음서이기 때문에 우리는 요한 복음을 사도 요한이 쓴 복음서라고 말하는데 주저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적 배경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주후(AD) 70(성전 파괴) 전까지 기독교인들은 회당에서 유대인들의 관습을 따라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성전이 파괴되고나서 성전의 리더들이었던 사두개파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고, 8-90년쯤 바리새파가 유대교의 권위를 가진 리더쉽 그룹이 되면서 회당을 장악하게 됩니다. 그들은 유대교를 철저히 개혁하기 위해서 회당에서 기독교인들이 예배 드리는 것을 금지시키고, 이 일로 기독교인들과 유대교인들 사이에 적지 않은 갈등이 빚어집니다. 요한복음에는 이런 갈등을 보여주는 사건들이(9:22, 12:42, 16:2)이 많이 등장합니다. 요한복음은 이와같은 당시(AD 80-90년경)의 가장 첨예했던 종교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의 특징

   이번에는 요한복음의 특징을 살펴보겠습니다. 요한복음은 이미 쓰여서 읽히고 있던 다른 복음서 (공관복음)들을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 비슷한 복음서를 쓰고자 하는 의도가 없었습니다. 요한은 자신이 전하려는 신학적 메시지를 위해서 공관복음서의 시간적 흐름과 사건의 순서들을 자유롭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재편집했습니다. 그래서 공관복음서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딱 한번 방문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요한복음은 여러차례 방문한 것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또 요한복음은 복음서 중에 제일 어려운 복음서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건을 단순하게 나열한 것이 아니고, 어떤 의미를 가진 상징과 은유가 많습니다. 한 챕터, 한 패러그래프, 한 문장, 글자 하나, 접속사 하나를 그냥 보낼 수 없는 깊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대단히 세련된 문체로 쓰여졌고 전체적인 완성도가 높습니다. 그래서 다른 복음서에 비해서 쉽게 읽히지 않고 어렵게 느껴지지만, 이런 이유로 인해서 요한 복음은 묵상해야 하는 복음서라고 불려집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만 해도 한번에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논리적인 연결성이 복잡해서 단번에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이 본문은 헬라 철학의 개념과 논리를 사용하고 있고, 또 요한의 공동체에서 노래로 불려졌던 노래 가사였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 본문이 말하려는 바는 분명합니다. ‘예수가 누구신지설명하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맨 첫 도입부의 서문을 통해서 처음부터 예수가 누구신지 천명하고 시작하려고 합니다. 읽어봅시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그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으니, 그가 없이 창조된 것은 하나도 없다. 창조된 것은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니, 어둠이 그 빛을 이기지 못하였다.” (1-5)  

 


   예수는 누구신가?

   요한복음 서문은 우선 예수님을 말씀이라는 단어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말씀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 ‘Logos’는 , 이치, 이성, 비율, 지혜, 원리, 정신이라는 여러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삶에 질서를 가져다 주는 개념들입니다. 이성이라든지, 비율이라든지, 원리나 정신은 무질서한 삶을 질서 있게 해주는 요소들입니다. 결국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우리의 무질서한 삶을 질서 있게 해주는 분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우리들의 무질서한 삶과 영혼을 질서 있게 회복시켜주는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창세기의 첫 부분을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흑암과 혼돈과 공허로 가득한 세계를 향해 말씀으로 창조를 시작하십니다. 그 말씀은 무질서한 세계 위에 질서를 세우는 역할을 합니다. 구약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로 인해서 삶이 무질서해 질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에 다시 귀기울임으로 자신들의 삶을 질서 있게 회복시키곤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분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로 요한복음 서문은 예수님을 생명을 주시는 분으로 소개합니다. 3-4,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으니, 그 없이 창조된 것은 하나도 없다. 창조된 것은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다.” 이 말씀을 보면 요한복음 서문은 틀림없이 창세기 서문을 참고하고 있습니다. ‘태초에로 시작하는 첫  문장도 그렇고, ‘창조라는 표현도 그렇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들에게 생명을 불어 넣으셨듯이, 예수님도 우리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예수님을 믿으면 저절로 생명을 얻게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교회를 다닌다고, 입으로 예수믿는다고 말한다 해서 생명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오히려 예수님을 우상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예수를 믿는 것이 어떻게 생명을 얻는 길인지에 대해서 좀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너무 교리적인 단답형 정답을 고민없이 받아들이지 마시고, 요한복음을 깊이 묵상하면서 예수님이 왜 생명을 주시는 분인지 찾아봅시다.

   세째로 요한복음 서문은 예수님을 어둠이 이기지 못하는 빛으로 소개합니다. 4-5절입니다. “창조된 것은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니, 어둠이 그 빛을 이기지 못하였다.” 표현이 아름답고 시적이며, 은유도 참 적절합니다. 예수님은 어두운 세상의 빛이실뿐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빛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름 아닌 각 사람 속에 있는 빛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예수님에 대한 설명 중에 이 설명이 제일 가슴에 와 닿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안에 있는 빛이십니다. 우린 누구나 생의 고난과 어려움을 안고 살아갑니다. 누구에게나 어두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는 빛도 있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용서하고 인내하고 절망하지 않고,    온갖 어두움을 견디게 하는 힘, 신비로운 빛이 있습니다. 그것은 희미하고 약해 보일지 모르지만, 내 안의 어둠이 이 빛을 결코 이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 빛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빛

   그 옛날 유대교 신앙을 가지고 살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게 되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기로 결심했다는 이유만으로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세상을 떠도는 디아스포라 신세가 되었습니다. 인생이 얼마나 깜깜하고 암울했을까요? 그러나 그들은 자기 안에 있는 빛을 발견했고, 그 빛으로 자신들을 뒤덮은 어둠을 이겨냈습니다. 그들이 최초의 크리스찬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을 수록,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려고 애쓸수록, 무질서한 삶 속에서도 내면의 질서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었고, 생물학적인 목숨 외에도 영혼의 목숨, 즉 영적인 생명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내면에 계신 예수님은 그들의 내면에 벌써 드리워져 있던 어둠을 몰아내고, 끊임없이 다시 어두워지려는 계략을 물리치는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신앙의 역사를 통해 모든 신앙 선배들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안에 있는 빛이십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는 얼마나 자주 어두움에 사로잡히곤 합니까? 쉽게 실망하고, 좌절하고, 원한에 사로잡히고, 욕심에 사로잡히고, 외로움 속에서 허덕일때가 얼만 많습니까? 하루에도 여러번씩  어둠의 포로가 되고, 나도 몰래 어둠 속에 머물러 있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어느 누구의 문제가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문제일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럴 때마다 우리 안에 빛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설교 준비를 위해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은 다름 아닌 사람의 빛이라는 말씀이 너무나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안에 빛이 있습니다. 만일 그 빛이 우리 내면에서 발화하기 시작하면 우리가 아무리 깜깜한 어둠에 휩싸여 있다고 해도 어둠은 서서히 물러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있는 사람의 빛, 예수 그리스도라는 빛은 어둠이 결코 이길 수 없는 빛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내 안에 어둠이 이길 수 없는 놀라운 빛이 있다는 것을 믿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러분, 요한복음 강해 설교 첫번째 시간을 마무리합니다.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예수님은 무질서한 우리 삶과 영혼에 질서를 가져다 주시는 분이고, 참 생명을 주시는 분이며, 어둠이 깃들일 때마다 우리 영혼을 환하게 비추셔서 모든 어두움을 몰아내시는 분입니다. 사람의 빛, 어둠이 이기지 못하는 빛, 예수 그리스도라는 빛을 우리 안에서 환하게 비추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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