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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강해 (3) - 두 개의 질문

글쓴이 : admin 날짜 : 2017-10-08 (일) 05:31 조회 : 87

요한복음 강해 (3)

두 개의 질문 Two Questions”

요한 John 1:35-39 / 2017108

 


   들어가는 말

   세례 요한이 제자 둘과 함께 서 있는데, 예수께서 지나가시자 보아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다하고 말하고, 세례 요한의 두 제자는 그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그때 예수께서 자기를 따라오는 두 사람을 향해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지십니다. 이 질문은 오늘 여기 앉아 있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예수님의 질문이요, 예수님을 따르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질문이기도 합니다. 너희는 무엇을 찾고 있느냐?”

   그런데 두 사람은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엉뚱하게 다른 질문을 되돌려 던집니다. 이 질문은 예수 따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주님을 향해 끊임없이 던져야 할 질문입니다. 주님,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이 질문은 예수님의 거처나 숙소를 묻는게 아니라, ‘예수님이 존재하시는 공간, 장차 제자들에게 열어 주시려는 세계에 대해 묻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당신은 누구십니까, 당신은 어떤 분입니까?’하고 묻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 예수님은 짧고 함축적으로 대답하십니다. 와서 보아라!” 이 대답도 역시 단순한 대답이 아닙니다.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렇듯 요한복음은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 깊은 의미가 담겨 있어서 곰곰히 곱씹어 묵상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지 말의 1차적인 의미로만 읽으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오늘 예수님과 요한의 두 제자들이 나눈 대화만 해도 마치 선문답처럼 들리지 않습니까? 서로 연결성이 없는 질문과 대답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 선문답 같은 대화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초점을 맞출 것입니다. 여기에는 기독교 신앙인으로써 명심해야 할 매우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던지고자 하시는 질문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고, 우리가 예수님을 향해 끝없이  던져야 할 질문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의 질문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번째 질문 : 무엇을 구하느냐? What are you looking for? 

   이 질문은 주님께서 최초로 당신의 제자가 될 사람들에게 던진 질문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제자가 되길 원한다면, 예수님을 믿고 그분을 따르기를 원한다면 먼저 이 질문과 마주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구하십니까? 여러분이 좇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며, 이루고자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지금 계획하고 도모하고 추진하는 것을 통해서 결국 얻으려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바라고 원하고 구합니다. 그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인생을 다 바치지만, 왜 내가 그것을 바라고 그것을 추구하는지 그 궁극적인 목적을 잊어 버릴 때가 많습니다. ‘나는 원해, 나는 바래, 나는 뭐가 되고 싶어, 난 이걸 추구해라고 말할 때, 우리는 단지 그것을 갈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갈망의 아래 쪽 더 깊은 곳에 우리가 진짜 갈망하는 더 궁극적인 것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묻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무엇을 구하느냐?’

   어떤 사회학자가 서구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삶의 세 가지 가치를 조사했습니다. 첫째는 돈, 둘째는 성공, 세째는 가족이었습니다. 남녀를 떠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일 먼저 돈을 모으고 싶어하고, 그 다음에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성공적인 자리에 오르고 싶어했습니다. 그리고나면 그 부와 성공의 전리품들을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누리고 싶어했습니다. 이상할 것도 없고, 잘못될 것도 없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동의 할만한 연구 결과입니다.

   그러나 이 사회학자는 이렇게 지적합니다. “서구사회에서 돈과 성공과 가족은 중요한 것을 너머  맹목적인 신앙이 되어가고 있다. 이것을 위해서라면 의심도 반성도 해보지 않으려한다. 물론 돈도 중요하고, 성공도 중요하고, 가족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궁극적인 목적은 아니다. 돈과 성공과 가족, 그것을 얻음으로 우리가 진짜 얻으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돈과 성공과 가족을 위해 사는게 인생의 목적이라고 믿고 살아왔다면 이쯤에서 예수님의 질문과 마주할 필요가 있습니다. ‘너는 무엇을 구하고 있느냐?’ 여러분, 우리가 삶의 분투를 하며 온 힘을 다해 얻으려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 꿈과 소망과 열정은 무엇을 지향하고 있습니까? 밤잠을 못 이루며 우리가 얻고자 하는게 무엇입니까? 주님의 질문 앞에 서봅시다. ‘너는 무엇을 구하느냐?’    

   우리는 인생을 살다가 가끔 실패나 좌절을 겪습니다. 정상적인 삶의 궤도를 본의 아니게 벗어날 때가 있습니다. 우린 흔히 이런 상황을 불행하거나 좋지 않은 상황이라고 여기지만, 사실은 이런  상황은 결코 불행한 상황이라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난 지금 뭘 하고 있나, 난 지금 어디로 가고 있나라는 근본적이고 궁극적인 질문을 던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절망의 상황은 우리를 주님의 질문 앞에 서게 합니다.    

   참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에 대해 의심도 반성도 없이, 그저 늘 살아온대로 익숙한 습관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자신의 삶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고  반성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What am I looking for? 나는 무엇을 구하는가?’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질문을 항상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두번째 질문 : 주님, 어디 계십니까? Where Are You, Lord? 

   본문에서 세례요한의 제자였던 두 사람은 랍비님,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라고 질문합니다. 첫번째 질문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던지고자 하시는 질문이라면, 이 두번째 질문은 우리가 주님께 여쭈어야 하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처음 만난 사람에게 어디 사는지 묻곤 합니다. 단순한 호기심이나 인사치레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대 유대 사회에서 사는 곳이 어딘지, 묵고 있는 곳이 어딘지 묻는 것은 대단히 진지한 관심을 표명하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이런 것과 같습니다. 홀로 사는 남자가 홀로 사는 여자에게 어디 사는지 묻는다면, 그것은 단지 그가 사는 집이 궁금해서 묻는게 아니지요. 아주 진지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묵는 곳에 가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 사람의 분위기는 어떻고, 무얼 좋아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는 곳을 묻는다는 것은 깊은 관심이 있다는 뜻이고, 당신이 사는 곳에 가보고 싶다는 뜻이며, 당신을 깊이 알고 싶다는 뜻입니다.    

   그런 뜻에서 아까 말씀드린대로, ‘어디 묵고 계십니까?’라는 질문은 예수님이 머무시는 장소나 숙박 공간을 묻는 것이 아니라, ‘당신은 누구시고 어떤 분인지 당신을 깊이 알고 싶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을 알고 싶어 하는 순수한 갈망의 표현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를 믿고 있지만 우리 안에 이 질문이 없는 것 같습니다. ‘주님, 당신은 누구십니까? 당신은 어떤 분입니까?’ 별로 질문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정말 누구시고 어떤 분인지 궁금한 마음이 있으신가요? 예수님을 정말 알고 싶은 갈망이 있으십니까? 단지 지식이나 정보가 아니고,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도 아닌, 내 존재의 중심이 이해하는 그런 앎으로 예수님을 알고 싶지 않습니까? 직접 보고듣고 만지는 것보다 더 생생하게 아는 그런 방식으로 예수님을 알고 싶지 않습니까? ‘주님, 어디 묵고 계십니까? 주님, 어디 계십니까?’라는 질문은 이렇게 주님을 알고 싶어하는 갈망의 표현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 질문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알고 싶어하는 갈망을 가진 사람이  진정한 예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이 계시는 곳을 알고 싶어하고, 주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싶어하며, 그래서 할 수 있다면 그분과 함께 거기서 머물고, 그분과 함께 살고자 하는 갈망이 있어야 합니다. 그 갈망이 있었던 두 사람은 예수님의 첫 제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 뜻에서 우리도 이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주님 어디 묵고 계십니까? 주님 어디 계십니까?”


   예수님의 대답 : 와서 보아라 Come and See 

   예수님의 대답이 굵고 짧습니다. ‘와서 봐라!’ 이 말씀 역시 궁금하면 한번 와서 보라는 뜻으로만 읽어선 안되겠지요. 예수님은 자신에 대해 알고 싶은 갈망으로 가득찬 두 사람에게 기꺼이 자신을 오픈 하셨습니다. 그것이 Come의 의미입니다. 내게 오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작고 죄가 많고 부족해도, 만일 우리 안에 주님을 알고자 하는 진지한 갈망이 있다면 주님은 우릴 향해 지체없이 자신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Come! 이 음성을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누군가 내게 주입해서 억지로 집어넣은 지식과 내 스스로 알고자 하는 갈망을 가지고 다가가서 알게 된 지식은 천지 차이입니다. 주님을 알고자 하는 갈망이 가득했던 두 사람은 결국 예수님께  가까이 가게 되었고, 결국 주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See의 의미입니다. 내게 가까이 와서 나를 이해하고 나를 알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만일 우리가 진정 주님을 알기를 갈망한다면 결국 주님을 이해하고 알게 될 것입니다. See! 이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오는 말

   1960년대 미국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던 전설적인 가수 Janis Joplin  아시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로큰롤을 부르는 여자 가수로, 자유와 방랑의 대명사였지요. 제니스는 온 세계를 자유롭게 떠돌면서 수 많은 사람들에게 추앙을 받았는데, 그녀의 영향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따라 세상을 방랑하며 히피 문화의 정점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격정적인 열정으로 최고의 자리에 올랐을 때, 그녀는 문득 자신이 혼자라는 사실을 깨닫고, 이후 마약과 약물을 남용하다 겨우 27세의 나이에 폐인이 되어 세상을 떠납니다

   제니스는 어렸을 때 몽유병이 있었다고 합니다. 잠이 든 상태에서 일어나 집 밖으로 걸어 나가면 어머니는 놀라서 소리쳤다고 합니다. “제니스, 너 뭐하는 거야? 도대체 어디 가는 거니?” 그때마다 제니스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집으로 가요. 내 집으로 가는 거에요.” 어린 제니스의 영혼 속에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본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강한 욕구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녀가 가수가 되어 세계를 떠돌았던 것도 집으로 가는 길을 찾는 과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끝내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비딱하게 잘못된 삶을 살이오지 않았다고 안심해서는 안됩니다. 남들과 다르지 않게  평범하게 살았다고 안심할 일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미처 깨닫지 못한 사이에 우리도 길을 잃은채  오랫동안 여행해 왔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집으로 가는 길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난 그럭저럭 잘 살아온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엉뚱한 길을 걸어왔고, 신앙생활 잘 하며 산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내 영혼이 텅비어있고 병들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참 두려운 일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말씀처럼 우리에겐 이 두개의 질문이 중요합니다. ‘나는 무엇을 구하고 있는가?’, ‘주님, 어디 계십니까?’ 이 질문을 붙잡고 살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끊임없이 내가 가는 길이 올바른지, 제대로 가고 있는지 물어야 합니다. 끊임없이 주님 알고자 하는 갈망을 가지고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두 개의 질문을 붙들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주님은 ‘Come 나에게 가까이 와라, And See 나를 온전히 알아라!’하고 대답하실 것입니다. ‘Come and See’의 축복이 저와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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