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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강해 (5) - 상을 둘러 엎어라

글쓴이 : admin 날짜 : 2017-11-20 (월) 23:52 조회 : 31
요한복음 강해 (5) 
“상을 둘러 엎어라 Overturn Your Table” 
요한 John 2:13-16 / 2017년 11월 12일 


   1.  
   예루살렘 성전은 역사적으로 세번 건축되었습니다. 첫번째 건축은 기원전 900년경, 솔론몬 왕이 예루살렘의 시온산 정상 위에 성전을 지은 것입니다. 그런데 약 500년이 지난 뒤 바빌론 침략으로 유다 왕국이 멸망하면서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가고 이때 이 성전도 파괴됩니다. 이후 바빌론이 멸망하고 해방된 백성들이 돌아와서 기원전 400년경에 두번째로 성전을 재건축합니다. 하지만 200년이 지나 또다시 헬라 제국에 의해 성전이 파괴됩니다. 

   세번째 건축은 로마제국 시대에 헤롯 왕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헤롯은 로마제국의 신임을 얻어 유다의 왕이 되긴했지만 유대인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자, 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을 대대적으로 보수하고, 화려하고 웅장한 성전을 건축합니다. 예수님 당시 제자들이 감탄한 크고 웅장한 성전의 모습은 헤롯 왕이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화려하게  지은 결과물이었습니다. 예수님 사후에도 20년 이상 건축이 이어질 정도로 대 공사였습니다.   

   그러자면 건축 비용이 많이 들었겠지요. 그것을 어떻게 충당했을까요? 아시다시피 유대인들은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적어도 일년에 세번 큰 절기 때마다 성전을 찾아 왔습니다. 지중해 연안의 곳곳에 사는 유대인들이 이렛길, 열흘길, 한달 길을 걸려서 찾아왔습니다. 유대 역사 책에 의하면 가장 큰 절기에 제사를 드리기 위해 성전을 찾아오는 사람의 숫자가 60만이 넘었다고 하니, 상상할 수 없는 규모의 경제적 거래가 이루어질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머나먼 곳에서 왔으니 환전을 해야했습니다. 바꾼 돈으로 예루살렘 체류 비용으로 썼고, 제사를  드릴 때 필요한 제물을 사는데 그 돈을 썼습니다. 가난한 이들은 비둘기를, 조금 여유있는 사람들은 양을, 부자들은 소를 제물로 구입했습니다.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 돈 바꾸는 환전상들이 성전 앞에 있었던 이유입니다. 성전 관계자들은 엄청난 돈을 벌었고, 이 돈으로 성전을 지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빌미로 성전 뜰은 돈 거래가 횡행하는 시장판이 되곤 했던 것입니다. 

   2. 
   이같은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고 오늘 본문 말씀을 읽으면 아주 생생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때는 유월절, 유대인의 가장 큰 절기를 맞아 다른 유대인들처럼 예수님도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런데 성전 뜰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 돈 바꿔 주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서 그들을 내쫓고, 돈 바꿔주는 사람들의 돈과 상을 둘러 엎으셨습니다. 그들을 향해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셨습니다.    

   예수님이 가끔 화를 내기도 하시고, 야단을 치기도 하시고, 종종 냉정한 말씀을 하기도 하셨지만, 이렇게 과격하게 말씀하시고 행동하신 것은 복음서를 통털어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멀리서 찾아온 사람들이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절기 때마다 항상 일어나는 관행이었기 때문에 예수님도 이런 광경을 처음 본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이토록 과격하게 말씀하시고 행동하셨을까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종종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도록 강렬한 행동을 통해서 제자들과 당대 사람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곤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의 강렬한 행동, 상을 둘러 엎어 버리시는 그 행위를 통해서 예수님은 무슨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셨을까요? 오늘 예수님이 우리에게 던지시는 중요한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네 앞에 놓여있는 상을 둘러 엎어라’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우리가 둘러 엎어야 할 상은 무엇일까요? 

   3.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 중세 시대의 가톨릭, 오늘날의 기독교는 놀라운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종교 제도와 형식이 신앙의 본질과 내용을 완전히 삼켜버렸다는 점, 복음과 사랑이 율법과 교리로 대체되어 버렸다는 점, 예배 따로 삶 따로의 신앙생활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점,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신앙이 아니라 나와 내 가족의 안전과 복을 위한 신앙이라는 점, 성직자의 타락이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부패했다는 점입니다.    

   지난 10월 마지막 주일이 종교개혁이 일어난지 500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이런 뜻 깊은 시기에 한국에서는 10만명의 성도수를 자랑하는 한 대형교회 목사가 절대로 그렇게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놓고는 교묘한 방법으로 아들에게  담임목사 자리를 세습시키려고 해서 시끄럽습니다. 부끄럽게도 JTBC 뉴스에 방송이 되면서 이제 대한민국 전체가 지켜보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얼마나 교회와 교인들을 우습게 알면 이런 짓을 저지를까요?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냥 혀나 끌끌 차면서 손가락질 하는 것만으론 아무런 변화도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잘못된 것을 향해 비판을 하는 동안 우리는 암암리에 의로운 쪽에 서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런 식으로는 그 무엇도 새롭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삶을 변화시키고, 신앙을 새롭게 하며, 이 시대의 새로운 종교개혁이 일어나길 원한다면, 먼저 내 자신의 삶과 신앙을 돌아보고 점검해야 합니다. 남의 상이 아니라 내가 진열해 놓은 상을 먼저 뒤 엎어야 합니다. 

   어쩌면 성전 뜰에서 비둘기나 양이나 소를 파는 사람은 바로 우리들인지 모릅니다. 어쩌면 내가 돈 바꾸는 상인일지도 모르며, 어쩌면 내가 바로 아버지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든 장본인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무엇으로 아버지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고 있을까? 우리 자신을 돌아 봅시다. 그리고 지금 내가 둘러 엎어버려야 할 상은 무엇일까 생각해 봅시다. 각자 상황은 다르겠으나, 저는 오늘 우리들이 공통적으로 둘러 엎어야 할 것, 두 가지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4.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다는 한 율법 교사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 무엇입니까? 그랬더니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여기에 모든 하나님의 말씀의 본 뜻이 달려있다!”   

   예수님 시대의 유대교가 잃어버린 것, 중세 시대의 가톨릭 교회가 놓쳐버린 것, 오늘의 기독교가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것, 그것은 바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예수께서 모든 하나님의 말씀의 본뜻이 달려있다고 하신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잃어버릴 때마다 교회와 신앙인들은    여지없이 부패하고 타락했습니다. 교회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슬로건으로 내 걸지만, 정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유대교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은 제쳐두고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외적인 방법과 율법 조문을 지키는 일에 집착했을 때, 굉장한 성전을 지었고 타락한 종교 집단이 되었습니다. 중세 가톨릭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엔 관심이 없고, 길고 복잡한 라틴어 미사의 미신적인 힘을 강조하며 성직의 권위에 집착했을 때,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웅장한  성당을 지었고 크게 타락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관심을 갖지 않고, 개인의 성공과 복을 빌어주는 번영의 복음을 전파했을 때, 수만 수십만의 성도를 수용하는 커다란 교회 빌딩을 짓고 부패해 가고 있습니다. 

   우린 어떨까요?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나올 때 하나님을 생각하기 보다는 다른 부수적인 것을 생각할 때가 더 많습니다.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을 갈망하는 마음을 갖기보다  솔직히 하나님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루터기 모임을 통해서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갖자고 권합니다. 그러나 하루 24시간 중에 15분, 아니 5분을 주님께 내어드리는 것도 참 어렵게 느껴지는게 솔직한 현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는 커녕 하나님에 대해 거의 관심이 없는게 아닐까 하는 반성을 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타락시키는 사람들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사는 삶은 필경 우리 삶을 타락시킬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하나님을 내 삶 속에서 정말 의식하며 사는게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해도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내 삶에 안계신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의식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식해야 죄를 두려워하고, 정직하게 살고, 어려움 속에서도 인내하며 살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식하며 살아야 우리 삶이 타락하지 않습니다. 

   5.
   이번에는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유대교는 이웃 사랑을 실천하기는 커녕 가장 돌보고 사랑해야 할 사람들을 제사드릴 수 없는 사람들로 규정지어 버렸습니다. 중세 가톨릭 교회는 소수의 영주와 성직자들이 대부분의 땅을 소유함으로 80% 이상의 백성들이 땅이 없는  소작농으로 살았습니다. 귀족과 성직자들 외에는 너무나 가난하게 살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다면 벌어질 수 없는 일입니다. 교회가 타락했다는 증거지요.   

   오늘의 기독교는 이전의 두 시대와는 겉으로는 달라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너무나 무관심하고 서투릅니다. 물론 교회들은 어느 때보다 선교를 많이 합니다. 자연재해로 어려움을 겪는 나라를 돕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교회들이 많이 돕지요. 그런데 정작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자매라고 고백하는 사람들끼리 교회 안에서 너무 싸우고 다투고 갈라집니다. 서로를 향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갖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쯤에서 예수님의 분노를 다시 떠올려 봅시다. “내 아버지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 우리가 교회 안에서 비둘기나 양이나 소를 팔거나 돈 바꾸는 상을 차려놓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명 가운데 핵심인 ‘이웃을 사랑하는 일’을 하지 않음으로 우리는 아버지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가 교회를 부패하게 하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교회의 사명은 무엇보다도 공동체 안의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성전 앞에서 둘러 엎어야 할 상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으로 말씀을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즉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사는 우리 삶의 습관을 둘러 엎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데려다 주신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려는 삶의 습관을 둘러 엎어야 합니다. 저는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실패할 때마다 종교가 부패하고 신앙이  타락했습니다. 그렇다면 부패하고 타락한 종교를 개혁하는 일은 다시한번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일에 달려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들이 되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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