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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주일 설교 - 어제, 오늘, 내일의 감사

글쓴이 : admin 날짜 : 2017-11-20 (월) 23:58 조회 : 288
추수감사주일
“어제, 오늘, 내일의 감사”
시편 Psalm 136:1-3 / November 19, 2017 


   들어가는 말 

   일본에 ‘시바타 도요’라는 유명한 할머니 시인이 계십니다. 3년 전에 타계 하셨지만 이 할머니는 하루의 일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쉬운말과 단순한 표현으로 시를 써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1911년생인 이 할머니는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만 졸업하고는 재봉일을 하거나 여관에서 보조로 일하면서 젊은 시절을 아주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20대 시절에 이혼의 아픔을 겪고, 삶이 너무 힘들어서 죽으려 한적도 있었다는 할머니는 33살에 다정한 요리사 남편을 만나 아들 낳고 잘 살다가 20년전에 그 남편과도 사별을 하고난 후, 아들의 권유로 90세에 시를 쓰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마침내 99세에 첫 시집을 출판하는데, 현재 일본에서만 150만부 이상이 팔렸다고 합니다. 100년 넘게 살아오신 인생의 대 선배가 들려주는 인생에 대한 지혜를 담은 시 몇편 소개해 드립니다. 

<약해지지마> 

있잖아,
불행하다고
한숨 짓지마

햇살과 산들바람은
한쪽 편만 들지 않아
꿈은 평등하게 꿀 수 있는거야

나도 괴로운 일 많았지만
살아 있어 좋았어
너도 약해지지마

<저금> 

난 말이지,
사람들이 따뜻하게 대해주면
마음 속에 저금을 해둬
외로워질 때 그걸 꺼내 힘을 내는 거야
당신도 지금부터 저금해봐
연금보다 나을테니


<바람과 햇살과 나> 

바람이
유리문을 두드려
문을 열어주었지

그랬더니
햇살까지 따라와
셋이서 수다를 떠네

할머니 
혼자서 외롭지 않아?

바람과 햇살이 묻기에
사람은 어차피 다 혼자야
나는 대답했네

그만 고집부리고
편히 가자는 말에
다 같이 웃었던 오후


   이 할머니의 시 속에는 삶을 너그럽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습니다. 휠체어 앉아서 살아 가시면서도 삶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있고, 비록 얼마남지 않은 인생이지만, 자신의 남은 미래를 평안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여유가 있습니다. 이 할머니의 시를 읽다보면, 이 분의 가슴 속에 삶에 대한 어떤 따뜻한 에너지가 있다고 느끼는데, 자신이 살아왔던 지난 과거,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재, 앞으로 살게 될 미래, 한마디로 삶 전체에 대한 감사의 에너지가 가득한 것 같습니다.  

   이 할머니가 신앙을 가진 분이신지 잘 모르겠지만, 이분이 가졌던 삶의 에너지는 가장 신앙적인 요소임에 틀림없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삶 전체를 감사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 136편은 앞부분 세절만 읽었지만 전체를 읽어보면, 왜 우리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삶 전체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 줍니다. 

   첫 소절에서 시편 기자는 주님은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에 우리가 감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주님이 선하시고 인자하시기 때문에 감사한다기 보다, 주님이 선하시고 인자하심을 정말 믿을 수 있을 때 감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주님이 정말 선하고 인자하신분임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삶의 모든 차원에 대해 감사하며 살 수 있습니다. 어제에 대해, 오늘에 대해, 그리고 내일에 대해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각각 살펴보겠습니다. 

   어제에 대한 감사 
  
   어제에 대해 감사하려면 우선 과거의 삶을 진지하게 성찰해야 합니다. 과거를 돌아볼 때 우리는 주로 두 가지 태도를 취합니다. 하나는 과거의 어떤 영광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입니다. 잘나가던 시절, 성공적이었던 시절을 현재의 나와 동일시합니다. 다른 하나는 과거의 실패나 불행, 쓰라린 상처를 병적으로 붙들고 있는 태도입니다. 그 불행과 상처에서 떠나지를 못합니다. 둘다 과거에 묶여 있는 것이고, 과거 때문에 현재가 영향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를 걷는 신세가 되자 옛날 애굽에서 먹던 고깃가마를 그리워했습니다. 그 만족스러웠던 과거에 집착하자 감사를 잃어버리고 불평하며 현재의 삶을 놓쳐버렸습니다. 반대로 노예 살이의 상처나 불행에 붙들려 자유하지 못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엉뚱한 것을 신으로 섬기고, 상처를 타인에게 전가하는 파괴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노예살이에서 분면 벗어났는데, 여전히 노예 살이와 다름 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과거에 대해 묶이면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과거를 대하는 제 3의 방법이 있습니다. 내 과거가 어떠했든지 간에 따뜻하고 너그럽게 그리고 겸손하게 지난 과거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심지어 상처 투성이 불행으로 점철된 과거라고   할지라도, 그 모든 시간이 내게 필요했던 과정이었다고 믿을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선하시며  인자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믿을 때, 지나온 과거의 삶을 은총의 과정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지난 과거를 찬찬히 돌아보십시오.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랑과 배려의 손길이 있었습니까? 당연하게 생각하고 넘어간 일이 많지만, 삶의 고비고비마다 소중한 도움이 있었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의 손길을 베풀어 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불행과 상처의 기억만 붙들고 있어서 그렇지 사실 우리는 훨씬더 많은 사랑과 은혜의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제에 대해 감사하는 것은 지나온 내 삶에 묻어두었던 은혜의 보물들을 새삼 발견하는 일입니다.  

   오늘에 대한 감사   

   이번엔 오늘에 대해 감사하는 법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오늘 품은 마음, 오늘 하는 행동이 진짜 내 모습이고, 오늘의 내가 바로 나입니다. 나중에 감사하기로 하고 오늘 불평하고 있다면 난 불평하는 사람입니다. 내일 사랑하기로 하고 오늘 미워한다면 나는 늘 미워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늘 품은 생각, 오늘 하는 행동이 내가 진짜 누구인지를 드러내 줍니다. 따라서 오늘해야 합니다. ‘옛날에 그랬었는데’란 생각을 버리십시오. ‘내일 해야지’라는 속삭임 믿지 마십시오. 오늘 내가 무슨 생각, 무슨 행동을 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오늘을 감사하지 않으면 결코 감사할 수 없습니다.  

   만약 오늘의 상황이 비참하거나 고통스러운 상황이라면, 지금 겪고 있는 상황을 마지막 결과로 보지 말고 나에게 가장 선하고 바람직한 결과를 향해 나아가는 중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동시에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간에 주님은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상황이 어떠하든 오늘을 감사한다는 것은 오늘 지금 나와 함께 계신 주님을 알아챈다는  뜻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을 알아채는 영적 감수성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사람들이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삶의 기준은 ‘많고 적음’, 혹은 ‘높고 낮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이 갖게 되거나 높아지면 행복하고 만족스러워 하고, 적게 갖게 되거나 낮아지면 불만족스럽고 불행을 느낍니다. 그러나 오늘을 감사할 줄 알면 많고 적음, 높고 낮음의 기준이 아무런 의미도 갖지 않게 됩니다. 오늘, 지금, 여기의 삶에 포커스를 맞추고, 오늘, 지금, 여기에 주어진 것에 감사해 보십시오. 오늘을 감사할 줄 아는 것은 어떤 상황에 처할지라도 자족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우는 길입니다.  

   내일에 대한 감사   

   마지막으로 내일에 대해 감사하는 법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바울 사도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 했습니다.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내일에 대해 감사한다는 것은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 누구도 내일 일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일을 불안해 합니다. 하지만 내일도 주님은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내일 앞에서 불안해 하지 않고, 담대히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근심과 걱정, 두려움은 대부분 아직 오지 않은 내일에 대한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렇게 되면 좋겠다는 내일에 대한 우리의 기대와 욕망 때문에,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까봐 근심하고 걱정하는 것입니다. 근심과 걱정은 대개 우리들의 욕망의 크기와 비례합니다. 만일 내일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기대와 욕망을 내려놓고, 언제나 선하시고 인자하신 하나님이 허락해 주시는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면, 아마 근심과 두려움에서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아무리 미래가 막막하고 불안하고 두려울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끝까지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끝까지 믿는 것,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시편 기자의 고백을 진짜 내 것으로 삼을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내일에 대해 감사한다는 것은 영원히 선하시고 인자하신 하나님을 굳게 믿는다는 뜻이며, 따라서 우리 삶에 드리워진 불필요한 두려움과 근심을 과감히 버리는 것입니다. 

   마무리  

   프랑스가 자랑하는 그 유명한 밀레의 <만종>이라는 그림입니다. 이 그림에는 아주 슬픈 사연이 담겨 있지요. 저 아래 바구니에는 감자씨가 담겨있습니다. 감자씨를 심으며 겨울을 나야 했던 가난한 시절, 그럼에도 노동 후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평화로운 그림처럼 보이지만, 사실 처음엔 저 바구니에 굶어 죽은 두 부부의 아이의 시신이 담겨져 있었답니다. 그것을 본 친구가 사정사정해서 감자씨로 바꾸어 그렸답니다. 가난, 굶주림, 자식의 죽음이라는 절망의 끝자락에서 두 손을 모은 사람들의 경건하고 신비로운 모습이 담겨져 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요?     

   말씀을 맺겠습니다. 어제에 대해 감사한다는 것은 어제 나와 함께 계셨던 하나님을 발견했다는 뜻입니다. 오늘에 대해 감사한다는 것은 오늘 나와 함께 계신 주님을 알아채고 있다는 뜻입니다. 내일에 대해 감사한다는 것은 내일도 나와 함께 계실 주님을 분명히 믿는다는 뜻입니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에 대해 감사한다는 것은 내 인생 전체를 통해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소중한 믿음의 행위입니다. 

   따라서 감사는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예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사하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채는 것이고, 하나님께 살아있는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감사만큼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희망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감사만큼 우리들의 삶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없습니다. 감사 할만한 조건이 있을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어떤 순간에라도,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항상 감사하며 살아가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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