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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강해 (6) - 다시 짓는 성전

글쓴이 : admin 날짜 : 2017-12-06 (수) 06:19 조회 : 29

요한복음 강해 (6)

다시 짓는 성전 Rebuilding the Temple”

요한 John 2:18-22 & 고전 Corinthians 3:16-17 / 20171112

 


   무너진 성전

   지난 시간에 우리는 예수께서 성전 안뜰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 그리고 돈 바꿔주는 사람들의 상을 뒤 엎어버린 사건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이것을 걷어 치워라. 내 아버지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아라!”라고 소리를 치셨지요. 그러자 유대 사람들은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이런 짓을 저지르느냐고 따졌습니다. ‘당신이 이럴 자격이 있느냐, 만약 있다면 그 표징을 보여달라, 그 증거를 대라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성전을 허물라. 그러면 내가 사흘만에 다시 짓겠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기가차서 말합니다. “이 성전을 짓는데 46년이나 걸렸는데, 당신이 이것을  사흘만에 다시 짓겠다고?” 요한복음은 이 지점에서 설명을 덧붙입니다. 예수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자기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는 것입니다. 또 제자들은 이 말씀을, 예수께서 죽으시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신 뒤에야 무슨 뜻인지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 드린대로 예루살렘 성전은 역사적으로 세번 건축되었습니다. 첫번째로 기원전 900년경 솔로몬에 의해서, 두번째는 바벨론에 멸당 당한 후 다시 해방되어 돌아온 기원전 400년경 에스라와 느헤미야 총독에 의해서, 세번째는 주전과 주후가 교차되던 로마제국 시절에 헬라제국에 의해 파괴되었던 성전을 유다의 헤롯 대왕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건축한 것입니다.  

   말씀드린대로 헤롯 대왕은 로마제국의 신임을 얻어서 유다의 왕이 되긴했지만 유대인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자, 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전을 대대적으로 보수하고, 놀랄만큼 크고 웅장한 성전을 짓습니다. 본문에 따르면 이미 성전 건축을 위해 46년이 걸렸는데,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에도 20년 이상 건축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성전 건축이 마무리된 후 10년도 안되어서 로마제국에 의해 산산히 파괴됩니다

   언젠가 갈릴리의 시골뜨기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올라왔다가 성전의 거대하고 웅장한 위용에 놀라서 주님, 정말 굉장하지 않습니까?’라고 경탄했을 때, 예수님은 이렇게 예언하셨습니다. “내가 분명히 말하거니와 이 성전은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 그 예언의 말씀대로 예루살렘 성전은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완전히 파괴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이때부터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유일한 공간으로서의 성전 개념이 사라져 버립니다

   여러분, 성전은 뭐하는 곳입니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곳이었습니다. 레위기를 보면 제사의 본질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님과 다시 연결(reconnect)되는 것이었습니다. 백성들은  성전에서 제사드림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다시 연결됐습니다. 하지만 성전이 파괴되어 버렸습니다. 이제 어디서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말씀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세우신 성전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성전을 허물면 내가 사흘만에 다시 세우겠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유대인들은 이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성전은 쉽게 무너뜨릴 수도  없거니와 아무리 재주가 좋아도 사흘만에 다시 지을 수는 없습니다. 이 말씀이 은유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다시 세우겠다는 성전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이것이 오늘 말씀을 위한 핵심 질문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세우시겠다는 성전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우선 예수님이 세우시려는 성전은 눈에 보이는 건축물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교회 건물을 성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교회건물은 성전이 아닙니다교회 건축을 성전 건축이라고 말해선 안됩니다. 권위와 위엄, 웅장한 규모와 화려함, 거짓 자부심과 돈 거래로 지어진 건축물로서의 성전은 이미 예수님이 헐어버리셨는데, 왜 오늘의 기독교는 다시 그런식의 성전 개념을 복기하려 할까요? 왜 예수님이 다시 세우신 성전엔 관심이 없을까요?   

   예수님이 세우신 성전은 무엇입니까? 본문 21절은 예수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자기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예수님은 죽으신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죠. 이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이 사흘만에 지어진 새로운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더 이상 건축물이 아니며, 몸으로 집적 보여주신 예수님의 삶의 방식이자 복음의 정신입니다. 그래서 최초의 기독교인들은 더이상 건물을 성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 그 사람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성전이라 믿었습니다. 이것은 바울에 의해서 더 분명하게 밝혀집니다.  

   오늘 두번째 본문의 배경이 되는 고린도 교회는 아주 번창하는 교회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경제적으로도 아주 넉넉했습니다. 그러나 교인들이 네 그룹으로 갈라져 버렸습니다서로 시기하고 미워하고, 비난하며 싸웠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들의 방식대로 살고 있었습니다. 서로 상대방 말에 귀기울이지 않았고 오직 자기들이 옳다고 믿는 방식을 따라 교회를 세워가려고 했습니다. 그때 그들을 향해서 바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멸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고전3:16-17)

   바울은 예수님에 의해 새롭게 지어진 성전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성전이기 때문에, 서로 비난하고 헐뜯고 미워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더이상 건물이 아니며,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이는 조직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따라서 성전은 바깥 어디에다가 짓는 것이 아닌 우리 안에 짓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다시 짓는 성전

   ‘몸된 성전, 몸된 교회라는 말을 흔히 하는데, 이 말은 내 몸처럼 귀한 성전 혹은 내 몸처럼 귀한 교회라는 뜻이 아니라, 우리 몸과 우리 존재가 성전이며 교회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말씀하시고, 바울이 분명하게 설명해준 그 참된 성전을 어떻게 우리 안에 지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우리는 저마다 몸된 교회가 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말씀에서 다시 그 해답을 찾습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만에 다시 세우겠다.” 


   1.

   제일 먼저 할 일은 옛 성전을 허무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옛 성전은 무엇일까요?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모르지 않았고, 예배드리는 일에도 열심이었습니다. 제물을 드리고, 율법을 지키며헌신적인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무너져야 할 성전 중심의 옛 신앙이었습니다. 성전 중심의 옛 신앙의 결정적인 문제점은 하나님을 놓친 채 신앙 행위에 몰두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거룩하게 예배드리고, 열심히 신앙생활 한다해도 하나님을 놓친다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옛날 학창시절 교회 목사님과 어른들은 교회 건물을 성전처럼 다루어야 한다고 강조 하셨습니다. ‘강단에 함부로 오르지 말라, 강대상, 의자, 마이크, 피아노도 함부로 만지지 말라. 기타나 드럼 같은  악기는 강단 위에 올리지 말라.’ 그래서 참 조심스러웠습니다. 예배당을 거룩하고 질서있게 유지하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외적 성소를 거룩히 지키는 것보다, 진짜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 내면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허울만 남은 옛 성전,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허물어야 합니다.   


   2.

   두번째로 우리 안에 참된 성전을 지으려면, ‘사흘이라는 시간을 취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성전을 다시 세우시는데 사흘이 필요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사흘이 필요합니다. 사흘은 시간이라기보다  ‘삶의 자세를 의미합니다.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의 생의 마지막 사흘동안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첫날은 십자가와 죽음의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둘째날은 무덤에서 침묵의 시간을 보내셨습니다그리고 세쨋날, 마침내 새로운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이 사흘이 필요합니다

   이 시대에 십자가와 죽음은 거의 금기시된 단어처럼 들립니다. 누가 십자가를 좋아하고, 죽음을 반가워하겠습니까? 우리는 십자가와 죽음을 불편해 합니다. 실제의 십자가와 죽음이 아니더라도, 십자가의 상황, 죽음의 상황과 비슷하기만 해도 우리는 서둘러 빠져나오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새 성전을 건축하려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진정으로 회복하고 다시 연결되려면, 나라고 하는 자아의 죽음 없이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나를 잃지 않고 하나님을 얻는 방법은 없습니다.        

   우리는 좀더 침묵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세상에는 내 힘과 의지로 풀어갈 수 없는 문제들이 너무 많습니다. 특히 내면의 오랜 상처나 무의식의 문제, 영적인 어려움과 같은 문제들은 내 의지로 거의 풀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럴때는 내가 해결해 보려고 발버둥치기보다 침묵 속에서 잠잠히 기다릴 필요가 있습니다. 이 침묵은 무덤처럼 답답하고 무력한 시간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침묵은  결코 무력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침묵은 내가 죽고 하나님이 활동하시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완전한 죽음과 무덤 속의 깊은 침묵 속에서 가능했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3.

   세째로 우리 안에 참된 성전을 지으려면,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나 자신이 성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날마다 내 안에 성전을 건축해야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66년이 걸려서 건축 되었지만, 우리 안에 짓는 성전은 일평생 지어야 합니다. 우리는 틀림없이 하나님의 성전이지만, 수시로 이 성전을 더럽히곤 합니다. 성전이 되었다가 죄의 소굴이 되었다가 하는 것이 우리 몸입니다. 따라서  허물고 또 짓고, 또 허물고 또 새롭게 짓기를 우리 생이 다하도록 해야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성전임을 끊임없이 기억하며 우리 안에 성전을 짓는 제일 좋은 길은 또 다시 기도와 묵상입니다. 침묵 속에서 하나님을 의식하며 깊은 기도를 하다보면, 하나님의 영이 우리 내면을 가득 채우고, 어느새 우리는 하나님으로 채워진 거룩한 성전이 됩니다.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음성에 귀기울이다보면, 내 삶에서 허물어야 할 것이 무엇이며, 다시 세우고 나아가야 할 방향이 어디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내 몸, 내 삶, 내 꿈,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나오는 말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안에 참된 성전을 다시 지읍시다. 그러기 위해서 옛 성전을 허물어 버립시다. 하나님 없는 예배, 봉사, 헌신, 하나님을 놓쳐버린 형식적 신앙생활을 허물어 버립시다. 그리고 사흘이라는 시간을 취합시다. 십자가와 죽음, 무덤과 침묵의 시간 속에서 기꺼이 나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삶의 주도권을 내어 드립시다. 그리고 깊이 기도하며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 내면을 하나님의 영으로 채우고, 하나님과 다시 연결되어 살아갑시다. 이렇게 날마다 자신 안에 새로운 성전을 짓는 여러분 위에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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