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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강해 (9) - 빛으로 나아가기

글쓴이 : admin 날짜 : 2018-01-17 (수) 12:59 조회 : 161

주현절후 둘째주 / 요한복음 강해 (9)

빛으로 나아가기 Coming to the Light”

요한 John 3:20-21 / 2018114

 


   들어가는 말

   작년 연말에 치매를 앓고 있는 아내를 태우고 운전을 하는 택시 기사의 이야기가 한국 신문에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이후에 그 택시를 탄 사람들의 목격담이 온라인에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 어떤 목격자의 사연 한 토막을 소개하겠습니다.

   어느날 빈차라는 싸인을 보고 택시를 잡았는데, 타려고 보니까 앞좌석에 손님이 있는걸 보고 놀라서 타지 않으려 하자, 기사님이 빈차가 맞다고 어서 타라고 해서 뒷자석에 탔답니다. 그런데 앞좌석 뒷면에 이런 글귀가 붙어 있더랍니다. 앞 자리에 앉은 사람은 알츠 하이머(치매)를 앓고 있는 제 아내입니다. 양해를 구합니다.”  

운전을 하는 내내 기사님은 아내에게 많은 말을 건네줍니다. 그러다가 아내가 사탕이 먹고 싶다고 하자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 줍니다. 사탕을 다 먹고 조금 지났는데, 자기한테 왜 사탕을 안주냐고 아내가 다시 떼를 씁니다. 그러자 기사님은어 그래? 난 아까 준줄 알았네. 깜빡하고 안줬구나. , 사탕 여기있어.” 모른척 다시  사탕을 건네줍니다. 그리고나서 기사님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는데, 목격자는 그 노래를 듣다가 아침부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접하면서 저도 택시 기사님의 모습에 큰 감동을 느꼈습니다. 아내를 집에 혼자 두지 않으려고 조수석에 태워 택시 운전을 하는 모습, 아내가 심심하지 않게 계속 말을 걸어주고 사탕을 건네주고, 또 사탕을 달라고 하자 기억 못하는 아내가 무안하지 않게 자기가 깜박 했다고 배려하는 모습, 지긋한 나이에 택시 운전을 해야만 하는 삶, 택시 운전을 하면서도 아내를 돌봐야 하는 삶, 그 기구한 삶의 어려움 속에서도 콧노래(무의식에서 나옴)를 부르는 모습에 콧등이 시큰해집니다.   

   그런데 저는 이 기사님에게서 한 가지 다른 차원의 아름다움을 발견합니다. 솔직히 상황이 이럴 경우 일반적으로 아내를 오히려 세상에 드러내지 않는 여러가지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함께 다니면 귀찮고 창피하기도 하고 오히려 번거로울 때가 많은 겁니다. 그런데 이 분은 자기 삶의 가장 연약한 부분, 부끄러워서 감추고 싶은 부분을 오히려 자연스럽게 드러냅니다. 저는 이 부분이 참 아름다운 삶의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설마 이게 상술은 아니겠지요.   

   사람은 누구나 연약한 부분, 부끄러운 부분이 있게 마련입니다.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고 숨기고  싶은 치매 걸린 아내같은 부분이 있게 마련입니다. 대부분 우린 그런 것들을 드러내려 하지 않고, 그래서 그런 긴장 때문에 삶을 무겁고 어둡게, 그리고 힘겹게 살아갑니다. 그것을 감추려고 많은 에너지를 쓰기 때문에 삶을 지치게 하는 거죠. 하지만 이 택시 기사분은 자신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단순하게 드러내면서 아름다움과 감동을 전해주지 않습니까?

   오늘 저는 약하고 부끄러운 부분을 끊임없이 감추고 살아가는 삶과 연약하고 부끄럽지만 빛으로 나아가 자신을 열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삶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성경 이야기

   무언가를 설명하려고 할 때 그것이 매우 깊고 심오해서 간단하게 설명하기 어려울 때 사용하는 수단이 바로이미지입니다. 시인이나 화가 같은 예술가들이 이것에 능한 사람들인데, 예술가들은  자기가 경험한 아름다움을 설명할 길이 없을 때 상징적인 이미지를 통해 그것을 표현하려 합니다. 이때 이미지는 많은 말과 여러 구구한 설명보다 오히려 더 효과적으로 목적한 바를 전달해 줍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을 때 사람들은 이 분을 누구라고 말해야할지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특별히 곁에서 함께 한 제자들에게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면모를 보이다가도 또 인간적인 면모도 보이고, 기적을 베푸시는가 하면 어떤 때는 아무 기적도 베풀지 않으시고, 죽은 사람을 살리신 분이 정작 자신은 무력하게 죽음을 당하시고, 죽으셨구나 했는데 다시 부활하시고, 신앙 좋다는 사람들은 질책을, 이방인과 죄인들에겐 너무 따뜻한 친구셨습니다. 대체 이분은 누굴까

   복음서 저자들은 예수님을 여러가지로 설명하려 애썼지만 어려움을 많이 느꼈을 것입니다. 이때 제자들 가운데 가장 예술가적인 기질이 강했던 사도 요한은 자신의 복음서를 통해 예수님을 어떤 이미지로 설명하려 했습니다. 어떤 이미지였을까요? ‘입니다. 예수님을 빛으로 소개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 첫 서두부터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으로 소개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빛이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니 어둠이 그 빛을 이기지 못하였다..  빛이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비추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 빛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논리적으로 서술하지 않고 이미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너무 잘 이해할 것 같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사람을 비추는 빛이라는 것입니다. 빛이 비칠때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우선 어두움이 물러갑니다. 감출 수 있는게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라는 빛 앞에서 감출 것 없이 환하게 살아 가는 것이고, 내 안에 있는 어두움을 끊임없이 몰아내며 사는 것입니다. 어두움을 줄여가고 빛을 늘여가는 것, 점점 더 밝아지고 환해지는 것, 그게 예수 믿는 사람들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함께 읽은 요한복음 3장 본문도 살펴 봅시다.  

   악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은 누구나 빛을 미워하며 빛으로 나아오지 않는다. 그것은 자기 행위가 드러날까 보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리를 행하는 사람은 빛으로 나아온다. 그것은 자기의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본문 말씀에서빛으로 나아오지 않는 사람빛으로 나아오는 사람을 한번 비교해 봅시다. 누가 빛으로 나아오지 않을까요? 빛을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환히 드러나는 것이 싫은 사람, 자기가 간직한 어두움이 밝혀질까 두려운 사람이겠지요. 반대로 누가 빛으로 나아올까요? 빛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연약하고 부끄러워도 드러내고 밝히고 환하게 빛 가운데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겠지요.

   그러나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악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과 진리를 행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게 아니라고. 빛을 싫어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게 아니라고. 누구나 악보다는 선을, 어둠보다는 빛을 좋아하지만, 여러 이유로 인해서 우리는 어떤 아픔이나 상처, 두려움 같은 것을 갖게 되고, 그것은 곧 감추고 싶은 우리의 연약함과 부끄러움이 되곤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우리의 어두운 부분이 됩니다.

   악은 악을 저지르기로 각오한 사람을 통해 저질러지는게 아니라 상처와 두려움을 감추려는 사람에 의해서 은연 중에 저질러 집니다. 가장 악해 보이는 사람도 선한 부분이 있고, 가장 선해 보이는 사람도 악한 부분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며 사느냐에 달려 있다는 점입니다. 빛으로부터 도망갈 것이냐, 빛으로 나아갈 것이냐? 신앙이란 결국 빛으로 나아가기를 선택하는 일입니다. 부디 어떤 상황에서도 빛으로 나아가는 선택을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 이야기

   제가 첫 목회를 하던 교회의 사택은 옥상이 평평한 슬라브식집이어서 옥상에 빨래를 널 수 있었습니다. 햇빛이 좋은 날이면 아내가 빨래를 하고 제가 올라가 빨래를 넙니다. 그리고 한 나절정도 지나면 빨래가 뽀송뽀송하게 마릅니다. 그 빨래를 걷으면서 코를 갖다대면 그 냄새가 얼마나 고소하고 신선한지요. 그때 기억이 제 마음 속에 어떤 이미지로 남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제 내면이 어둡고 힘겨웠을 때, 그 때를 기억하면서 이런 시를 쓴 적이 있습니다


 <빨래>


햇빛 환한 날엔 

축축한 내 영혼을 꺼내 

빨랫줄에 널고 싶다 

하루 종일 널려 있어도 

나는 아무 욕심 없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양이 물들기 전 

구수한 냄새를 가진 깨끗한 존재로 

뽀송뽀송하게 거듭나고 싶다

 

   고백컨대 저는 작년 한해 참 힘들었습니다. 목회가 바쁜 것도 아니었고, 제가 성실하게 부지런히 목회를 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간단하지 않은 여러가지 이유들로 인해서 자꾸 좌절감에  빠지고, 그것을 이겨내고 극복하는 쪽으로 가기보다 자꾸 움추러들고 제 스스로 어둠 속으로 숨어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교회가 크게 성장하지 않아서 생기는 실패감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목회 자체에 대한 좌절감과 제 자신에 대한 좌절감이었습니다.

   무슨 목사가 믿음없이 좌절감을 드러내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마치 무슨 택시 운전사가 치매 걸린 아내를 다 공개하고 운전을 하나 하는 생각과 같은 것입니다. 저는  지금 제 삶에서 감추고 싶은 부분, 부끄러워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부분을 드러내고 있는 중입니다흔들림 없는 목사인척, 아무 문제도 없는 척 하고도 싶지만, 그리고 솔직히 부끄럽기도 하지만, 제 안의 아픔과 좌절이 있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밝히고, 환한 빛 앞에 열어놓고 싶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힘들고 어려워도 콧노래를 부르며 이 운전을 계속 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어쩜 치매 걸린 아내를 태우고 운전하는 이상한 택시에 탑승한 승객들일지 모릅니다. 그래서 불편을 느낄 수도 있고, 뭐 이런 운전사가 다있나 생각하며 이 택시에서 내릴까 생각하는 분도 계실지 모르지만, 그보다는 가능하면 정직하게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내고 부끄러움을 숨기지 않으려는 운전사의 택시에 탑승했다고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나오는 말 

   저는 지난 연말에 여러분 앞에서 교회를 떠나야 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기도와 분별의 시간을 갖자고 말씀드리고 두 주가 지났는데, 오늘부로 교회를 떠나기로 한 생각을 접겠습니다. 그간의 혼선으로 인해서 마음이 흔들리거나 상처를 받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용서를 구하고 사죄를 드립니다. 이제 저는 어두움에 머무르지 않고 빛으로 나아가려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와 같이 빛으로 나아가지 않으시겠습니까?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전혀 어두움 없이 사는 것이 아니라, 어두움이 찾아 오지만, 어두움에 머무르지 않고 빛으로 나아가기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금씩 더 환해지고 더 밝아지는 쪽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실망하고 좌절하고 어두움에 빠지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어두움에 머무르지 말고 용기있게 빛으로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어두움이 찾아오면 축축한 영혼을 꺼내서 밝은 은혜의 빛 아래 널고, 뽀송뽀송한 존재로 거듭나실 수 있길 바랍니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라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새로운 해, 새로운 태양, 새로운 빛이라는 뜻이지요? 그래서 새해는 신앙인들에겐 언제나 우리의 어두움을 몰아내고, 다시한번 새로운 빛 아래서 새 삶을 살아보라고 격려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새해를 맞아 우리 모두 새로운 빛으로 나아갑시다. 이전의 어두움을 다 내려놓고 새 빛으로 나아갑시다. <아멘>  


호호 2018-01-18 (목) 11:46
아멘! <애쉬번 한인교회>에 밝고 따스한 그리스도의 빛이 가득, 강렬하게 차오르길 기대하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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