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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강해 (10) - 이런 기쁨

글쓴이 : admin 날짜 : 2018-01-22 (월) 07:53 조회 : 110

주현절후 세째주 / 요한복음 강해 (10)

이런 기쁨 Extraordinary Joy”

요한 John 3:26-30 / 2018121

 


  1. 일상의 기쁨 Ordinary Joy 

    여러분, 무엇이 우리를 기쁘게 할까요? 우리 자녀들이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 오면 기쁘죠직장에서 승진하거나 운영하는 가게가 잘 되면 기쁩니다. 새로 집을 장만하거나 새 자동차를 살때,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으면 기쁩니다. 무언가 물질적 이득이 생기거나 외적인 채워짐이 있을때 우리는 기뻐합니다. 그런가하면 아름다운 곳을 여행하거나 좋은 영화, 공연을 관람할 때, 좋아하는 취미를 즐기거나 좋은 사람 혹은 가까운 친구와 편안한 시간을 보낼 때, 이렇게 무언가 정신적인 만족이나 내적인 채워짐이 있을 때 또 우리는 기뻐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내 자아를 대신해 주는 외부의 대체물을 통해 기쁨을 느끼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내가 졸업한 학교나 내 조국에 자부심을 느낀다든지, 내가 속한 단체나 모임에 애착을 느낀다든지내가 응원하는 스포츠 팀이 게임에서 이기거나, 국가간 경기에서 우리나라 대표팀이 이기면 격정적으로 기뻐합니다. 내가 속한 단체나 조국이나 스포츠팀은 심리적으로 아주 쉽게 내 자신과 동일시 되고, 나와 다르지 않은 그 대상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그것이 내게 큰 기쁨이 되는 겁니다.

   정리하면 결국, 나에게 물질적 이득이 생기거나 정신적인 만족이 생기거나 내 자아를 대신해 주는어떤 대체물을 통해서 승리의 만족을 느꼈을 때 우리는 기쁨을 느낍니다. 여기에 공통점이 있습니다. 내가 무언가를 성취하고 획득함으로 내 이기심이 채워질때 기쁨을 느낀다는 점입니다.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어떤 대체물이든 간에 내 자아가 높여지고 내 자부심이 커질 때 우리는 기쁨을 느낍니다. 이것은 누구나 경험하는 일상적인 기쁨’(Ordinary Joy)입니다.   

   그런데 가끔 일상적 기쁨과는 다른 종류의 기쁨을 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질적으로 별로  누리지도 못하고, 정신적으로 즐거울 것이 없는 상황인데 오히려 기쁨을 느낍니다. 이기심을 채우기는 커녕 연약하고 가난한데 오히려 기쁨을 느낍니다. 성 프란치스코, 문둥이의 친구 다미안, 사막의 성자 샤를드 푸코, 인도의 마더 데레사같은 이들을 비롯해서, 지금도 비천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생을 바쳐 살아가는 이름없는 성자들이 그들입니다. 그들은 이기심이 채워질 때 느끼는 일상의 기쁨과는 다른 종류의 기쁨, ‘비상의 기쁨’(Extraordinary Joy)을 누립니다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백색증이라고 불리는 선천성 유전병인알비노 환자들을 돌보며 사는 31세된 한국인 여성이 있습니다. 멜라닌 합성 결핍으로 눈이나 피부가 하얗게 되고, 햇빛에 취약해서 아주 조심해야 하는 병인데, 이 까다로운 질병에 대한 지원이 잘 이뤄지지 않아 버려진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 사람들을 찾아가서 그들을 돌보며 함께 산지 10년이 되었는데, 최근에 급성 말라리아에 감염되어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올해 겨우 31세 밖에 안된 젊은이였습니다. 저는 이분의 삶을 생각하면서 안타까움과 동시에, 대체 이 젊은이의 가슴에는 어떤 종류의 만족과 즐거움이 있었던 걸까, ‘그 비상한 기쁨에 대해 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1. 비상의 기쁨 Extraordinary Joy 

    오늘 본문은 세례요한과 그의 제자들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입니다. 본래 세례요한은 유대 사회에 혜성같이 등장해서 강력한 메시지를 선포하고 물로 세례를 주면서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던 영웅이었습니다. 당연히 세례요한을 따르는 많은 제자들이 생겨났고, 예수님도 사실은 이 제자 그룹에 속해있던 젊은이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점차 독자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따로 세례를 베풀자 세례요한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 모여들었습니다.

   이 현상이 세례요한의 제자들에겐 달갑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기들과 함께 제자 그룹에 속해 있던 사람이 갑자기 따로 활동을 할뿐 아니라 군중들의 환호를 받는 모습을 보면서 묘한 감정이 들었을 법 합니다. 그래서 스승님을 찾아와서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았는데, 세례요한은 제자들의 그런 말을 듣고는 오히려 만류합니다. ‘하늘이 주시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덧붙입니다

   “29신부를 차지하는 사람은 신랑이다. 신랑의 친구는 신랑이 오는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신랑의 음성을 들으면 크게 기뻐한다. 나는 이런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30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

   이것은 구약 성서의 혼인 예식의 비유인데, 신부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뜻하고 신랑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뜻합니다. 자기는 신랑이 아니며 신랑의 친구일뿐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은 신랑이 오는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신랑의 음성을 듣고 크게 기뻐하는, 이런 기쁨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세례요한의 제자들은 일상의 기쁨(Ordinary Joy)을 대표하고, 세례 요한은 비상의 기쁨(Extraordinary Joy)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례요한의 제자들은 유대 사회에서 주류였고 대세였는데, 예수님과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서 그 기쁨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일상의 기쁨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 기쁨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섭섭하고 기분 나쁘고 자존심도 상합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이 추구하는 기쁨은 그의 제자들이 추구하는 기쁨과 달랐습니다. 세례요한은 무언가를 획득하고 성취하고 자기 이기심을 채우는 그런 기쁨이 아닌, 다른 종류의 기쁨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사람인데 섭섭하고 서운한 마음, 밀려나는 아픔 같은게 없었을까? 아무리 훌륭한 성품을 가졌다 해도 어떻게 그는 흥하고 나는 쇠해야 한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나는 이런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고 고백할 수 있을까? 저는 개인적으로 이 문장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세례요한이 가진 기쁨, 이기심에 기초한 일반적인 기쁨과 다른 이 비상의 기쁨’, 대체 이게 뭘까어떻게 비참함을 느껴야 할 순간에 오히려 기쁨으로 가득 찰 수 있을까

   여러분, 이런 기쁨 멋지지 않습니까? 나도 이렇게 기뻐하고 싶다는 마음 안드십니까? 그저 내  이기심을 채워주는 그런 기쁨, 더 갖고 더 누리고 불편한건 피하고 내 안전과 이익과 편안함만을  좇으며 얻는 기쁨, 그러나 그런 것들이 채워지지 않으면 금방 슬퍼지는 물거품 같은 기쁨, 그런 기쁨 말고, 오히려 가장 낮아지고 비천해지는 순간, 결코 기뻐할 수 없는 순간에도 나는 이런 기쁨으로 가득차 있다고 고백할 수 있는 그런 기쁨을 배우고 싶지 않습니까


  1. 비상의 기쁨을 향하여 

    그렇다면 어떻게 일상의 기쁨을 좇는 삶을 내려놓고 비상의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살수 있을까요? 우리는 어떻게 비상의 기쁨을 누리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요? 우리는 그 비결을 다시 세례요한의 고백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나는 신랑이 오는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신랑의 음성을 듣고 크게 기뻐한다. 나는 이런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비결은 신랑의 음성을 듣는데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음성, 주님의 말씀에 늘  귀기울이며 살아가는 태도가 비상의 기쁨을 누리는 비결이었던 것입니다. 인생은 둘 중의 하나인 것 같습니다. 하늘의 음성에 귀기울이며 사느냐, 평생 자기 욕망의 소리에 귀기울이며 사느냐! 세례요한은 하늘의 음성에, 그의 제자들은 자기들의 욕망에 귀기울였습니다. 그리고 세례요한은 흔들리지 않는 기쁨을, 그의 제자들은 아주 쉽게 흔들리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하늘의 음성에 귀기울인다는 말을 너무 부담스럽고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그것은 믿음 좋은 사람, 영적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누구나 하늘의 음성에 귀기울일 수 있습니다. 내 얄팍한 욕망이 아닌, 나를 지으신 분이 지금 현재의 상황에서  나에게 원하는게 뭘까를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이 하늘의 음성에 귀기울이는 것입니다. 예배는 정기적으로 그런 질문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시간이고, 성경을 공부하고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이 바로 그런 시간이고, 기도회로 모여서 깊이 묵상하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분별하는 시간이 바로 주님의 말씀에 귀기울이는 시간들입니다. 따라서 이런 영적 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일이 중요하고, 그 속에서 우린 주님의 음성을 발견하고, 흔들리지 않는 기쁨을 경험하게 됩니다.  

   지난주와 지지난주 금요일 저녁에 두번에 걸쳐서 교회의 미래를 위한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재미있게도 첫째 모임과 둘째 모임에 여덟분의 똑같은 분들이 참석하셨습니다. 그런데 엊그제 기도회 시간엔 제 마음이 짠했던 것이, 참석하신 분들이 유난히 피곤해 보이셨습니다. 하루 종일 일하고 피곤해서 눈거풀이 거의 내려앉으신 분, 몸살 감기로 얼굴 색이 창백하신 분, 밤 운전이 서툴러서 라이드를 부탁해서 오신 분, 저녁도 먹지 않고 오신 분, 모두들 바쁘고 분주한 하루를 보내고 지친 몸으로 오신겁니다. 그렇게 지친 사람들끼리 모여 이런 찬송을 불렀습니다.

    “내 영혼이 그윽히 깊은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나네. 하늘 곡조가 언제나 흘러나와 내 영혼을 고이싸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선곡한 곡이기에 부른 찬송이지만, 제겐 마치 거기 모인 분들이 자신들의 신앙을 고백하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아무리 내 삶이 지치고 힘겨워도, 아무리 오늘 하루가 힘들고 피곤해도 내 영혼 그윽히 깊은 곳에서는 맑은 가락이 울려난다고, 하늘 곡조가 흘러나와서 내 영혼을 고이 싼다고, 하늘 위에서 평화가 내려온다고,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우리 영혼을 덮어 달라고, 기도하는 찬양처럼 들렸습니다. 이 찬양 한곡으로 사실 그날의 기도회는 끝난 셈이었습니다.

   일반적인 만족과 일상의 기쁨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이런 찬양과 고백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금요일 저녁,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가서 쉬어야 할 시간, 배도 고프고 몸 상태도 좋지 않고,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무슨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이 작고 초라한 교회의 미래가 뭐라고, 자신들의 안락함과 편안함을 내려놓고 이렇게들 모이셨을까? 제게 잔잔한 감동과 은혜가 몰려왔습니다.


  1. 나오는 말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저는 우리 교회가 새로워지기를 원합니다. 동시에 여러분의 삶도 새로워지길 원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새로워지는 만큼 우리 교회도 새로워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개인의 영적 성장과 영적 부흥이 일어나는 만큼 우리 교회도 성장하고 부흥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변화와 새로워짐이 우리 교회의 미래에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교회는 건물도 아니고 조직도 아니며, 전체 교인들의 추상적인 모임도 아닙니다. 우리 각 사람이 교회이고, 우리들의 삶의 내용이 우리 교회의 내용입니다. 여러분이 누군가를 비난하고 미워하면 우리교회는 비난하고 미워하는 교회입니다. 여러분이 용서하고 사랑하면 우리 교회는 용서하고 사랑하는 교회가 됩니다. 여러분이 예배를 소중히 여기면 우리 교회는 소중한 예배가 있는 교회가 되는 것이며, 여러분 각 사람이 영적으로 부흥하면 우리 교회가 부흥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우리 교회의 미래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정말 새로워지기를 원하고 변화를 바란다면, 저를 포함해서 우리 모두가 아주  작은 변화라도 일으켜야 합니다. 예전과 똑같은 모습으로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저도 변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작은 변화를 도모해 주십시오. 이전에 하지 않았던 아주 작은 실천이라도 시작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예배에 자주 빠지시는 분들은 예배에 빠지지 않는 변화를 도모해 주시고, 예배에 종종  늦으시는 분들은 시간을 잘 지키도록 한번 노력해 보는 겁니다. 기도회 모임에 한번도 참석해 보지 않으신 분들은 기도회에도 한번 참여해 보시고, 말씀 묵상이나 기도를 실천해 보지 않으신 분들은 아주 짧은 시간일지라도 스스로 한번 해 보는 겁니다. 작년에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영적 실천들, 여러 행사들, 교회 봉사와 섬김에 참여해 보는 겁니다.

   그래서 주일에 자주 빠지시던 분이 올해 꾸준히 예배에 참여하는 변화가 일어난다면, 교회의 미래를 위한 기도회 참석자가 다음에는 여덟명에서 아홉명으로 늘어난다면, 매달 리스버그에서  펼치는 라티노 선교에 새로운 교우분들 참여하신다면, 주보를 나눠주는 교우가 새로 나타난다면식사 후에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분이 주방 설겆이를 하신다면, 그 자체로는 큰 일이 아닐 수 있으나, 그것은 명백한 교회 부흥의 싸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들의 이기심을 만족시키는 그런 일상의 기쁨만을 좇아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로써 우리는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기쁨, 나누며 섬기며 낮아지는 기쁨,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기쁨, 세상이 알지 못하는 신비한 기쁨, 너희들이 보기엔 어떨지 모르나 나는 이런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놀라운 기쁨을 누리는 사람들이 바로 크리스찬입니다. 올 한해 우리 모두 변화를 위한 작은 실천들을 통해서 이와같은 비상하고 놀라운 기쁨을 맛보고 누릴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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