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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강해 (11) - 목마름

글쓴이 : admin 날짜 : 2018-02-12 (월) 11:03 조회 : 144

주현절후 마지막주 / 요한복음 강해 (11)

목마름 Thirst”

요한 John 4:7-15 / 2018211

 


   1.

   제가 어릴 적 살던 시골 마을에는 우물이 있었습니다. 동네 한 가운데 있는 우물에서 사람들은 먹을 물을 긷기도 하고, 아낙네들은 빨래를 하기도 했습니다. 우물에 모인 사람들은   영식이네 소가 새끼를 낳았다더라, 순옥이네 오빠가 명문 고등학교에 합격했다더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호기심이나 궁금증을 채우기도 했지요. 생각해보면 우물은 육신의 목마름을 채워주던 곳이었을 뿐 아니라, 삶의 목마름도 해소해 주는 센터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 당시를 회상해 보면, 저에게 동네 우물은 항상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아득해서 그 속을 헤아릴 수 없을 것 같은 우물의 깊이, 어둑하고 음산한데다 이끼가 가득 끼어있는 우물 속, 누군가 빠져 죽었다는 그래서 귀신이 산다는 소문, 이런 여러가지 이미지들 때문에 어린 저에게 우물은 혼자서 갈 수 없는 두려운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무더운 여름날 동네 형들과 어울려 놀다가 우물가로 달려가서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한 모금 마신 후부터 그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물 곁에 펌프가 생겼습니다. 물 한 바가지 부어 펌프질을 하면 그 물이 지하에서 물을 끌어와 폭포수 같은 물을 쏟아 내지요. 우물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쉽게 많은 물을 얻게 된 겁니다. 마실 물을 한번에 많이 받아 갈 수도 있고, 큰 다라에 물을 담아 쉽게 빨래를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저 펌프 주둥이 아래 엎드려 등목을 하면 여름철 더위가 다 사라졌습니다. 펌프는 목마름의 문제를 우물보다 두배는 더 효과적으로 해결해 주었습니다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단순했던 과거를 가만히 돌아보면, 사람에게 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육신의 차원이든 정신의 차원이든 목마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인간의 삶에 얼마나 근본적인 문제인지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동네 우물이든 펌프든 그것은 동네 사람들의 삶과 직결되었고, 사람들은 거기서 물을 얻었으며, 그것으로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목마름은 인간이 가진 모든 종류의 갈증을 상징하고, 물은 그 삶의 갈증을 해결해 주는 해결책임을 알 수 있습니다


   2.

   오늘 요한복음 본문에도 우물이 등장하고 목마른 사람이 등장하고, 목마름과 생수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우리는 즉시 이 이야기가 옛날 어떤 우물가에서 일어난 우연한 에피소드가 아니라, 뭔가 근본적인 인간의 목마름에 대해, ‘그 목마름의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책에 대해서 말하려는 이야기임을 알아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갈증, 그리고 그 목마름에 대한 해답을 어떻게 제시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갈릴리로 가시기 위해 사마리아 지방을 지나가고 계셨습니다. 사마리아는 유대인들이 혐오하는 이방 지역이지만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자면 사마리아를 통과해서 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사마리아 지방을 지나가다가 수가라는 동네에 이르게 되는데, 거기는 야곱의 우물이 있는 곳으로 유명한 마을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먹을 것을 구하러 동네에 들어갔고, 예수님은 피곤하셔서 그 야곱의 우물가에 앉으셨습니다.

   이 때, 한 사마리아 여인이 우물가에 물을 길으러 나왔습니다. 이 여인은 누굴까요? 시간은 오정쯤 되었습니다. 햇살이 가장 뜨거운 시각, 일반적으로 이 무렵엔 물을 길러 나오지 않습니다.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을 불편해 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4장 전체를 읽어보면 이 사람은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 사는 남자도 남편이 아닙니다. 유대 사회에서 손가락질 당하기 쉬운 삶을 사는 사람이고, 그럼에도 그런 삶을 청산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말하자면 우물가에 물 길러 나온 이 여인은 지금 당장 목이 마르기도 하지만, 인생 자체가 목마른 사람입니다. 외로움에 대한 갈증, 안정에 대한 갈증,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갈증이 있었던 사람입니다. 이 여인은 단지 육신의 목마름이라는 문제를 가진 것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목마름과 갈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어디 이 여인뿐이겠습니까? 누구나 인생의 갈증이 있습니다. 돈에 목마르고, 성공에 목마르고, 칭찬에 목마르고, 인정에 목마르고, 사랑에 목마릅니다. 하지만 갈증은 쉽사리 해소되지 않습니다. 돈을 마셔도 목마르고, 성공을 마셔도 목마릅니다. 칭찬은 마셔도 마셔도 계속 더마시고 싶습니다. 그러니 계속해서 다른 것을 찾고 갈망합니다. 다섯명의 남편과 살았던 여인, 그런데 지금 또 다른 남자와 사는 여인, 이 사람은 누구입니까? 끝없이 목말라하며 사는 우리들의 자화상 아닙니까?  

   사람들이 목마를 때 가장 쉽게 찾는 것이 청량음료입니다. 들이키면 시원하고 달콤하고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사실 마실때만 시원하고 갈증이 잘 가시질 않지요. 달달함이 입술에 남아서 오히려 더 갈증이 납니다. 그리고 실은 이를 썩게 하고, 위장을 거북하게 하며, 몸의 건강을 해칩니다. 인생의 갈증 앞에서 우리가 마셔대는 것들은 마치 청량음료처럼 마셔도 마셔도 갈증은 해소되지 않고, 오히려 삶을 썩게하고, 상하게 하며, 건강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 그치지 않는 갈증의 현상이 있다는 것입니다우리가 돈에 목마르고, 성공에 목마르고, 칭찬에 목마른 것 같지만 사실은 우리 안에 보다 더 근본적이고 궁극적인 목마름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채워지지 않으면 다른 것들로는 절대로 채워지지 않는 그런 깊은 목마름이 있습니다. 이 목마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3.

   오늘 본문의 한 귀절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물을 좀 달라는 예수님의 요청에 사마리아 여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유대 사람인데 어떻게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대단히 관습적이고 틀에 박힌 태도로 뱉은 말이지요. 그러자 예수님은 알쏭달쏭한 선문답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알고, 너에게 물 달라는 사람이 누군지 알았더라면 도리어 네가 그에게 물을 달라고 청하였을 것이다.” 여기에 해답이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선물

   하나님의 선물을 아는 것이 어떻게 우리의 끝없는 목마름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요? 우선 선물이라는 말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선물은 뜻하지 않게 주어지는 거죠. 선물은 우리가 기대는 할 수 있지만 달라고 떼를 쓰거나 요구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또 일하고 받은 댓가를 선물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내 공로나 노력이나 업적과 상관없이 받는 것이 선물이죠. 선물을 받을 때 우리가 기쁘고 감사한 이유는 기대하지도 않고 그만한 공로도 없는데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말과 정확히 일치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은혜라는 단어입니다. 은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우리가 일하고 받는 댓가가 아니며, 공로나  업적 때문에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은혜는 선물이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달라고 조르거나 요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은혜를 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사실은 좀 어색한 것입니다. 그러면 은혜는 뭐냐? 은혜는 요청하고 갈구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고 누리는 것입니다.

   야곱이 형과 아버지를 속인 일 때문에 집을 떠나야 했습니다. 집을 떠난지 얼마 되었을까, 황량한 베델 벌판에 이르렀을 때 야곱의 몸과 마음은 이미 지칠대로 지쳐 있었습니다. 가족을 속이다가  발각되었으니 죄책감도 있었을 것이고, 외삼촌 집을 잘 찾아갈 수 있을지, 자기 미래가 또 어떻게  될지 암담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거친 광야를 여행하다가 들짐승에 찢겨 죽을지도 모를 두려움도 엄습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지친 몸과 마음으로 황량한 벌판에 쓰러져 누워 잠들었습니다.      

   그런데 꿈 속에서 하늘로 이어진 사다리를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고, 어디로 가든지 지켜주며, 너를 떠나지 않겠다는 음성을 듣습니다. 잠에서 깬 야곱은 아무 것도 없는 그 허허벌판이 그냥 버려진 황야가 아니라 하나님이 계신 곳, 하늘로 들어가는 문이 있는 곳임을 깨닫습니다. 야곱은 처음으로 잘한 일이 하나 없는데 자기에게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 자격이 없는데 자기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즉 하나님 은혜를 경험합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은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있는 곳이 황량한 땅이냐 화려한 땅이냐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가졌느냐 안가졌느냐, 그것이 중요합니다우린 황량한 환경을 만나면 비옥한 환경으로 바꿔달라 간청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내가 어디있든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떠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아는 것, 이 진짜 하나님의 선물을 아는 것이 은혜요 복이고 가르칩니다. 이 은혜는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고 누리는 것입니다

   저는 자꾸 제가 처한 삶의 환경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잊습니다. 제 아내, 우리 아이들, 주변의 이웃과 친구들, 우리 교회, 그리고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들이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너무나 소중한 선물이란 사실을 자주 잊곤 합니다. 내가 처한 삶의 상황, 내게 데려다 주신 모든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의 선물이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장소이며, 하늘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사실을 자꾸 잊어버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는 사실을 진정으로 받아들일 때, 그리고 지금 이 모든 삶의 환경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성소이며, 하늘로 들어가는 문이라고 믿을 때, 삶이 얼마나 다르게 느껴지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게 이미 차고도 넘치게 주어졌습니다우리가 끝없이 목마른 이유는 하나님의 선물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선물을 안다면, 우리의 대책없는 목마름은 해결될 것입니다.  

  1. 나에게 물 달라는 분’ 

   한 가지 더 생각해 봅시다. ‘나에게 물 달라는 이가 누구인지 아는 것이 어떻게 우리 목마름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요? 이것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면 우리의 목마름의 문제가 해결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보다 깊은 의미가 숨겨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을 보자마자 물을 좀 달라고 청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물을 달라고 청하셨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도움을 청하시는 예수님, 무언가를 요청하시는 예수님, 무언가 어색하지 않습니까

   바로 이 지점입니다. 우리는 흔히 주님에게는 물도 필요 없고, 다른 사람의 도움도 필요 없고, 아쉬울 것이 전혀 없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물을 청하는 이 부분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예수님이 물을 달라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고 계시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주님을 전능하신 분으로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사람은 보통 청소년에서 청년으로 자라는 동안 어른이 되어 갑니다. 그런데 진짜 어른이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뒷모습에서 쓸쓸함을 발견했을 때, 어머니도 외로워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언제나 흔들림없이 우리의 버팀목이 되어주시고 필요로하는 것은 항상 제공해 주시는 분이라고 생각했던 부모님도, 사실은 자식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때 우리는 비로소 진짜 어른이 됩니다.

   저희 아이들이 대학생인데, 바쁜 대학 생활로 인해 정신없이 살아갑니다. 자주 생각나고 보고 싶고 목소리가 듣고 싶지만 아이들은 잘 연락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커서 엄마 아빠의 마음을 헤아리기 시작하면, 바빠도 연락도 하고 전화도 할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진짜 어른이 되겠죠.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제 젊은 시절을 회상해 봅니다. 얼마나 부모님께 무심했는지, 얼마나 그분들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는지, 20대는 커녕 30대가 되도록 어른이 되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지으신 전능하시고 위대하신 분입니다. 끝없이 우리를 지키시고 살피시는 분이지요.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성경을 보십시오. 그분이 얼마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랑과 관심을 기다리셨는지. 그 분도 우리에게 물 좀 달라고 요청하시는 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주님도 우리의 관심과 사랑에 목말라서 끊임없이 물을 좀 달라고 요청하신다는 사실을!

   우리 너무 주님께 무심한건 아닐까요? 주님을 너무 외롭게 만들지는 않습니까? 이런 설명을 너무 감상적이라 생각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탕자의 이야기, 집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간절한 목마름을 기억해 보십시오. 아버지도 목이 마르십니다. 그분도 외로우십니다. 이것은 그냥 지어낸 낭만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주님이 물을 달라고 했을 때, 여인이 두레박 핑계를 댑니다. 믿음이 없다는 핑계가 떠오릅니다. 또 우물이 이렇게 깊은데 어떻게 생수를 구할까 핑계를 댑니다. 내 삶이 너무 바쁘고 중요한 일이 많아서 그렇다는 핑계가 떠오릅니다. 그러나 이제 아버지의 외로움, 아버지의 목마름을 생각할 때가 되었습니다. 핑계를 내려놓고 주님께 더 나아갈 때가 되었습니다. 주님께 무심했던 습관을 내려놓고 기도로 묵상으로 예배로 찬양으로 주님께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아쉬움을 주님께 아뢰고 달라고 간청할 때와 달리, 주님의 목마름과 아쉬움을 헤아려 드릴 때, 우리는 영적으로 새로운 차원을 경험하게 됩니다. 주님과 새로운 사랑의 관계가 설정되고 주님과의 깊은 사귐이 시작됩니다. 이런 변화는 내 목마름에만 헉헉대던 삶에 여유를 가져다 주고,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과 함께 넉넉한 삶을 살아아게 됩니다. 우리 목마름의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소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인생의 끝없는 목마름, 어떻게 해결하시겠습니까? 어디에 있든지 나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 그 선물을 알고, 날마다 나에게 물을 달라고 청하시는 주님을 앎으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은혜를 누리실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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