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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강해 (13) - 물동이 버리기

글쓴이 : admin 날짜 : 2018-03-15 (목) 00:46 조회 : 99

사순절 네번째주 / 요한복음 강해 (13)

물동이 버리기

4:27-30 / 2018311


 

   1.

   <내려 놓음>이라는 책을 쓴 이용규 선교사라는 분이 계십니다. 잘 아시는대로, 이 분은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나오시고, 하버드대 중동 지역학/역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으셨지요. 박사 과정이 끝나갈 무렵, 한국과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 교수 초빙 제의를 받았습니다. 힘든 공부를 잘 마치고 전도가 촉망한 학자로 미래가 활짝 열렸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그는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평신도 선교사 자격으로 몽골로 떠납니다. 성공이나 명성과는 상관없는 삶을 택합니다. 

   작년 봄에 우리교회 여선교회에서 바자회를 열었지요? 거기서 얻은 수익금 전액을 과테말라 힐링 센터에 보냈습니다. 이 힐링센터를 운영하시는 목사님은 한국에서 개업한 의사였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병원을 접고 신학 공부를 하러 미국으로 건너 오지요. 공부를 다 마치고 연합 감리교회에서 목회 하시다가 우연히 과테말라에 가셨는데, 가장 기본적인 치료조차 받지 못해서  고생을 하고 쉽게 목숨을 잃는 사람들을 보고, 이번에는 목회를 접고 과테말라 오지중의 오지인 고산지대로 들어가서 그 곳 주민들을 돌보며 사는 삶을 선택합니다.        

   전에 부목사로 섬기던 교회의 한 집사님은 꽤 바쁜 비지니스를 하시는 분인데, 1년에 2개월씩 가게 문을 닫고 가난한 나라에 가서 버려진 고아들을 돌보고 돌아오십니다. 사업을 위한 기본 유지비를 빼고는 10개월간 번 돈을 거기 다 쏟아 붓고 오십니다. 그런데 워낙 드러내질 않으셔서  그분이 그렇게 사는 걸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분을 볼때마다 고개가 숙여지는 그런 분입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요. 참 멋지고 아름다운 삶을 사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이 오늘날에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셨을 때, 베드로와 안드레는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부였던 두 사람에게 배와 그물은 먹고 살기 위해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삶의 소중한 수단입니다. 배와 그물을 버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바울은 유대인이면서 로마 시민이었습니다. 로마 시민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교육을 받은 사람입니다. 또 유대인으로써 정통 바리새파 교육을 받은 엘리트였고, 유대교 안에서는 장차 떠오르는 차세대 리더였습니다. 그러나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에, 자신이 성취하고 누리던 그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고 고백합니다. 성경에는 이런 예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열두 제자들, 삭개오, 향유 옥합을 깨트린 여인, 거라사의 귀신 들린 사람이 그들입니다.


   2.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대체 왜 이럴까?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이렇게 되는 걸까? 예수 잘 믿으면 이렇게 되는건가?’ 여러분, 솔직히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일반적으로 두 가지 반응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첫째는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라 감탄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 반응 속엔 이런 생각이 숨어 있습니다. ‘나완 상관 없어!’  특별한 사람, 믿음 좋은 사람, 소명받은 소수의 사람들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이것은 사실 영웅을 찾는 심리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영화나 환타지 속의 영웅을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그 영웅이 대신해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거기서 심리적 위안을 느낍니다. 영웅이 내 대신 모든 걸 다 해주기 때문에 내가 뭘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게 함정입니다. 우리 주변의 신실한 신앙의 사람들, 또는 성경의 인물들을 영웅 바라보듯 대한다면 우리에겐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정말 대단해, 놀라워, 멋져라는 반응에 그치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성경은 놀라운 사람들, 영웅같은 사람들을 소개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습니다. 사실 아브라함과 야곱, 다윗과 솔로몬, 베드로와 바울, 그들은 영웅이 아니었습니다. 아주 평범하고, 때론 실망스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떤 계기를 통해서 삶에 변화가 찾아 오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인생의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옛날부터 붙들고 있던 삶의 방식을 버리게 되는 그런 경험을 합니다. 이것은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가야 할 길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자기를 기꺼이 버리고 거룩한 삶을 선택하는 신앙인들을 볼때 나타나는 우리들의 두번째 반응은 난 그럴 맘 없어, 왜 그렇게 살아야 돼?, 그럴만한 믿음도 없어라는 반응입니다. Too much라고 생각하죠. 왠지 정상이 아닌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두려움, 더 이상 아무 것도 누리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오해가 있습니다. 우리가  꼭 직업을 버리고, 지식을 버리고, 가정을 버려야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버린 고향 땅 본토 친척 아버지 집, 베드로가 버린 배와 그물, 바울이 버린 지식과 특권, 마리아가 깨트린 향유 옥합, 삭개오가 내려놓은 재산의 절반, 이것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들이 인생의 목마름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것들입니다. 말하자면  자신들의 인생을 경영해온 옛 삶의 방식들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인생의 근본적인 목마름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는 버릴 수 밖에 없었던 것들입니다.  

   쓸모가 없는데 가지고 있는 것은 더 이상 소중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재산이 아니라 짐이거나 쓰레기입니다. 그럴 경우 우리는 그것을 버립니다.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은 말 그대로 우리 재산과 지식과 가족이 아니라, 더 이상 우리의 목마름을 해소해 주지 못하는데도 여전히 붙들고 있는 옛 습관, 옛 삶의 방식들입니다. 그것이 무엇일지는 우리 각자가 고민해 봐야할 숙제입니다.


   3.

   이제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질 때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용규 선교사로 하여금, 과테말라 힐링 센터의 목사님으로 하여금, 해마다 고아들을 돌보기 위해 두달씩 여행을 떠나는  집사님으로 하여금, 베드로와 안드레로 하여금, 삭개오와 막달라 마리아로 하여금, 바울로 하여금, 자신이 소중하게 붙들고 있던 것들을 미련없이 내려놓고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을 살게 했을까요?  매우 분명하고 확실한 대답을 드릴 수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여기서 오늘 본문의 주인공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여인은 우물가에서 처음 예수님을 만날 때만 해도, 말도 섞지 않을 것처럼 쌀쌀 맞았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녀가 가진 목마름의 본질을 꿰뚫어 보시고, 또 이제껏 그녀가 어떻게 살았는지 모든 것을 알고 계신 것을 깨닫고,  영적인 문제, 즉 예배의 문제에 대해 질문을 던졌고, 거기에 대한 대답을 들은 후에 여인은 마을로 달려갑니다. 그런데 성경은 특이하게도 그녀가 그때 물동이를 버렸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여인은 목마른 여인이었습니다. 남자를 여러번 바꾸며 살았고, 지금도 여전히 다른 남자와 살고 있다는 사실이 그녀가 인생에 대해서 어떤 지독한 목마름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지금 우물가에 나왔다는 것은 그녀가 가진 목마름에 대한 또다른 상징이고, 그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한 소중한 수단이 물동이였습니다. 그런데 그 물동이를 버리고 마을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분은 새로운 우물이었고 새로운 물동이였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가진 목마름을 무엇으로 해결하십니까? 여러분에게 주님은 우물입니까? 아니라면 혹시 다른 우물을 갖고 계십니까? 그 우물이 여러분의 목마름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손에 들고 있는 물동이는 무엇입니까? 그것으로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물을  담을 수 있습니까? 만일 아니라면, 낡은 물동이를 버릴 필요가 있습니다. 야곱의 우물을 떠나서 새로운 우물을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려면 주님과의 만남이 필요합니다.

   세 가지 종류의 만남이 있습니다. 우선 오다가다 스치는 만남이 있습니다. 서로에게 관심도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둘째는 모임을 통해 자주 만나지만 그냥 인사만하고 지내는 만남도 있죠. 서로 피상적으로만 알고 지냅니다. 뭐하는 사람인지, 어디 사는지, 남편은 누군지 정도는 알지만, 그 이상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만남이 있습니다. 마주 앉아 차도 마시고, 속 깊은 고민을  나누기도 하고, 기쁜 일 어려운 일을 함께 공유하고, 도움을 주기도하고 받기도 하고, 내 집에 초청도 하고, 그 댁을 찾기도 하면서, 그야말로 인생 길을 함께 걸어가는 그런 만남이 있지요.

   지금 우리에게 주님과의 만남은 어떤 종류의 만남일까요? 부디 오다가다 스치는 만남이 아니길 바랍니다. 부디 자주 뵙지만 그냥 인사만하고 지내는,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는, 대충은 알지만 더 이상은 잘 모르거나 알고 싶지도 않은 그런 만남이 아니길 바랍니다. 그분과 마주 앉아 차도 마시고, 속 깊은 고민을 털어 놓는 그런 만남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쁨도 나누고 슬픔도 나눌 수 있는 그런 만남이 되길 바랍니다. 내 집에 그분을 초청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주님의 집을 수시로 찾으시기 바랍니다. 그런 만남, 그야말로 인생 길을 함께 걸어가는 그런 만남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의 기도가, 예배가, 말씀 묵상이, 숲 모임이, 봉사와 섬김이 그런 통로가 되길 바랍니다. 주님과의 그런 깊은 만남, 진지한 만남은 그동안 우리가 인생의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사용하던 물동이를 버리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그리고 내 목마름을 해결해 줄줄 알고 기웃거린 옛 야곱의 우물을 떠나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샘으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영원한 샘으로 우리를 인도할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물동이를 버리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새로운 삶을 향해 뛰어 갑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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