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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강해 (14) - 나를 보내신 분의 뜻

글쓴이 : admin 날짜 : 2018-03-19 (월) 11:26 조회 : 202

사순절 네번째주 / 요한복음 강해 (14)

나를 보내신 분의 뜻 The Will of Him who Sent Me”

요한 4:31-34 / 2018318



 

   1. 들어가는 말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읍내에 들어갔던 제자들이 먹을 것을 구해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제자들이 음식을 드시도록 권하자 예수님은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에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다.” 제자들이 무슨 뜻인지 잘 알아 듣지 못하자, 예수님은 덧붙여 말씀하십니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일을 이루는 것이다.” 

   알아들은 사람이 몇이나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 제자들에게 중요한 가르침을 주시려고 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예수님은 가끔씩 제자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시거나, 일부러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을 훈련시키는 예수님만의 특별한 방식이었는데, 이런 말과 행동은 제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겨서 오래도록 기억하게 하고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당장은 이해 못해도 나중에야 아하하고 깨달았습니다.    

   예를 들면, 성전 뜰에서 돈바꾸는 상인들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좌판을 뒤엎은 일, 베드로에게 사탄이라고 꾸짖으신 일,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신 일, 한 이방 여인에게 자녀들이 먹을 빵을 개에게 주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던 일, 성전을 헐어버리면 사흘만에 다시 짓겠다고 말씀하셨던 일들이  그런 예입니다. 제자들은 그 때는 전혀 알아듣지 못했지만, 워낙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그 때 하셨던 말씀과 행동들을 나중에 기억해 낼 수 있었고, 그것들을 두고두고 생각하며 묵상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나에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다.”고 하신 말씀도 제자들은 처음에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그 말씀을 묵상하면서 깨닫게 됩니다. ‘, 주님은 그 때 배고프지 않으셨던게 아니라, 흔한 말로 안 먹어도 배부르신 상태였던 것이구나’. 왜였을까요?  사마리아 여인이 온갖 속박으로부터 풀려나 자유를 얻게 된 것을 보고 너무 기쁘고 흡족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으로 이미 충분히 배부르셨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따라 사는 삶의 기쁨에 대해 알려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따라 살때 육의 양식이 필요없을 정도로 기쁘고 흡족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고자 했습니다. 그런 삶은 예수님에게만 해당되는 삶이 아닙니다. 제자들에게도 해당되고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삶입니다. 오늘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따라 사는 놀라운 삶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2.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이라는 말에 대한 선입견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이라는 말을 들으면 좀 부담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선 하나님이 나를 세상에 보내셨다는 것을 믿어야 하는데 선뜻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것도 뭔가 뜻이 있어서 나를 세상에  보내셨다고 하면 솔직히 부담스럽습니다. ‘그냥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어른이 되면 직장을 갖고 가정을 꾸리고, 자녀 잘 기르고, 집 사고 차 사고, 좋은 거 많이 먹고 좋은 데 많이 여행 다니고, 큰 병 없이 큰 고생하지 않고 살다가는거지,나를 누가 보내고 내 인생에 무슨 뜻이 있을까?....’ 

   또 이렇게들 많이 생각합니다. 특별한 소명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은 따로 있다는 거죠. 무언가 특별한 신앙과 특별한 소명감을 가진 사람을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특별한 사명을 맡겨주신다고 생각합니다. 슈바이처나 마더 데레사 같은 사람들, 특별한 목회자나 헌신적인 선교사들, 영웅적인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그들이 바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보냄 받은 사람들이라 생각하는 겁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렇게 선택되어 보냄받은 사람들이 아니면 그들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것일까요? 그들에겐 하나님의 뜻이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보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무슨 큰 일을 하며 살고 있지 않더라도, 무슨 특별한 일을 하고 있지 않더라도, 존경 받을만한 삶을 살아오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내가 무슨 목적으로 세상에 왔는지 잘 모른다고 해도, 우리는 하나님이 보낸 사람들이라고 믿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보냄받은 존재가 아니라면 우연히 세상에 태어난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우연히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믿는 것은 스스로 자신과 자신의 삶을 아주 가치없는 것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반대로 내가 세상에 태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며 어떤 섭리와 뜻 가운데서 왔다고 믿는 것은 우리 자신과 삶을 대단히 가치있는 것으로 만듭니다. 성경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대단히 가치있는 존재이며, 우리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하나님의 섭리 속에 계획된 소중한 존재라고 가르칩니다.

   ‘적극적 사고방식, 긍정의 힘’을 선포하는 미국의 유명한 설교자들이 있습니다. 대단한 호응을 받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메시지는 우리 삶에 유익을 줄 수 있습니다. 어떤 동기를 부여해 줍니다. 그러나 적극적 사고방식이나 긍정의 힘을 지탱해주는 뿌리는 <>입니다. 그러나 부름받은 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붙들고 있는 뿌리는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냄받은 자라는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적극적 사고방식과 긍정의 힘으로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는 그냥 월급이나 기다리면서 기계적으로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보다는 분명히 좋은 자세를 가졌습니다. 하지만 적극적 사고방식과 긍정의 힘을 발휘 할 수 있는 자기 의지가 지탱해 주는 동안만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냄 받은 자라는 믿음을 가지고 회사를 다니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는 하나님이 이 일을 맡겨 주셨고, 이 일을 위해 나를 부르셨다는 의식을 갖습니다. 상사를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식하기 때문에 모든 일에 정직하고 성실합니다. 자기 힘, 자기 의지만으로 일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일합니다.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보냄받은 자로 사는 삶은 이렇게 현실적으로도 매우 소중한 삶의 자세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현실적인 유익함 때문에 그렇게 믿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가운데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로 결심해서 온 분이 계십니까? 아니라면, 누군가가 보낸 것이 아닐까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너희를 보냈다고 자처하신 분이  계십니다. 바로 하나님입니다. 내가 보냄받은 존재라는 것을 거부하거나 부담스러워 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믿을 필요가 있습니다.


   3. 나를 보내신 분의 뜻

   하나님은 저를 애쉬번 한인교회의 목사로 보내셨고, 여러분을 애쉬번 한인교회의 교인으로, 성도로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이미 누구의 엄마로 아빠로, 아들과 딸로, 직장인으로, 비지니스맨으로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자휘자로, 반주자로, 여선교회장으로, 재정부장으로 부르셨습니다. 때로 하나님은 여러분을 고난 속으로, 실패의 골짜기로, 외로움의 광야로 보내기도 하십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가 하나님이 보내신 곳입니다.

   하지만 가끔 불만이 생깁니다. 왜 하나님은 나를 이런 자리로 보내셨을까? 왜 하필 고난의 자리, 어려운 자리, 낮은 자리로 보내셨을까? 그러나 생각해 봅시다. 하늘을 나는 이름 모를 새들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깊은 산 속의 한 그루 나무는 왜 거기 보내졌을까요? 누구도 시선을 주지 않는 길가의 풀 한 포기는 어떻습니까? 이들도 하나님이 보낸 생명들이지만 이들은 그런 불만을 갖지 않습니다. 자신이 보냄받은 자리에서 자기답게 자기 생명을 꽃피웁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핀 들꽃에게>

 

그대,

나비를 기다리는가

화려한 꽃밭을 꿈꾸는가

어여쁜 여인의 가슴에 안기고 싶은가

멋진 탁자 위 고급 꽃병이 그리운가

 

바람에게 네 삶을 맡기려는가

왜 그리 흔들리는가

 

지금 여기서

한송이 꽃으로 피어나는 것,

당신의 단 하나

목숨의 이유 아니던가

 

한눈 팔지 마시라

흔들리지 마시라

처절한 어둠과 외로움 속에서

그대 안의 닫힌 꽃망울들 터뜨리시라

아름답게 피어나시라

 

어느 순결한 아침

아무도 밟지 않은 새벽길 따라

은총같은 햇살 떠오르리니

 

그때, 지그시 눈 감으라

흔들리되 더는 흔들리지 않는

아름다운 꽃이 되리라

 

그대, 뭣하는가!

지금 여기서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시라

 

 


   하나님이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궁극적인 뜻은 무언가 어떤 특별한 일을 하게 하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행복하고, 우리의 행복이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며, 또 세상을 행복하게 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마치 한 송이 꽃과 같습니다. 꽃은 비교하지 않습니다. 꽃은 경쟁하지 않습니다. 성취와 업적을 쌓으려, 성공하려고 발버둥치지 않습니다. 그저 자기가 보냄받은 땅에서 자기 꽃을 피움으로 온 세상의 다른 생명들과 조화를 이루면서 하나님이 지으신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데 기여합니다. 우리는 한 송이 꽃입니다.

    따라서 비교하기 보다 내가 보냄받은 자리에서 내게 맡겨진 일을 소명으로 받아들이고 감당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보내진 자리가 비탈길일 수도 있고, 절벽일 수도 있며, 강풍을 견뎌야만 하는 들판일 수도 있습니다. 또 아무도 봐주는 사람이 없는 깊은 산 속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가 어디이든지 하나님이 보내셔서 살고 있는 것처럼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느덧 하나님이 보내신 뜻을 따라 거기서 우리 자신의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살아가는 자리가 어디이든지, 하나님이 보내신 자로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보낸 가정주부, 하나님이 보낸 회사원, 하나님이 보낸 태권도 사범, 하나님이 보낸 세탁소 주인, 하나님이 보낸 아빠, 엄마로 사시기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이 보낸 애쉬번 한인교회 교인으로 사시길 바랍니다. 어디서 무얼하며 살든지, 각자 보냄 받은 자리에서 자기 자신의 꽃을 힘껏 꽃 피울 때, 하나님은 비로소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기쁨을 누리실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아름다운 들꽃 같은 신앙인들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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