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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강해 (15) - 문제 없음

글쓴이 : admin 날짜 : 2018-03-26 (월) 07:34 조회 : 80

사순절 네번째주 / 요한복음 강해 (15)

문제 없음 No Problem”

요한 4:46-50 / 2018325


 

   1.

   제 삶을 가만히 돌아보면 인생의 시기마다 문제가 없었던 시기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청소년 시절엔 청소년 시절대로, 청년 시절엔 청년 시절대로, 무슨 고민이 그리 많았는지 밤잠을 못 이루며 고민의 나날들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연애할 땐 어떻게 결혼 허락을 받을까 고민했고,  결혼해서 신혼 때랑 애들이 한참 예쁘게 커갈 때는 돈이 너무 없어서 힘들었고, 애들이 청소년기를 보낼 때는 사춘기를 너무 심하게 앓아서 힘들다가, 대학가서 집을 떠나니 그리워서 힘이 듭니다. 아마 앞으로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하면 취직 문제, 결혼 문제로 고민하겠죠. 또 나이 먹을 수록  건강 문제나 경제적인 문제와 씨름해야겠지요. 삶은 참 문제로 가득한 곳입니다. 

   예전에 부목사로 섬길 때 제가 맡았던 교구가 유달리 부유하거나 좋은 직업을 가진 분들, 지위와 명성을 가진 분들이 많았습니다. 대부분 으리으리한 대저택에서  살고, 자식들도 좋은 학교 나와서 좋은 직업을 가진 분들이 많았습니다. 겉으로 문제가 별로 없을 듯 보이는 분들이지만, 사정을 알고보면 숱한 문제들을 안고 있었습니다. 자식과 연을 끊은 분, 알콜 중독에 빠진 분, 심한  우울증과 불면증을 겪는 분, 자살한 자녀를 둔 분, 문제가 없는 분들이 없었습 니다. ‘, 그 누구도 문제 없이 인생을 사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교우들의 사정을 알게 됩니다. 우리 교회만 해도 몇 가정 안되지만  저마다 힘겨운 문제들과 씨름하며 살아가십니다. 제가 늘 목회기도 할 때 마다 거론하는 기도의 제목들, 즉 경제적인 문제, 건강의 문제, 자녀들 문제, 관계의 문제, 영적인 문제들이 그것입니다.  교인들 형편도 다르고 사정도 다 다르지만, 공통점은 간단치 않은 삶의 문제들을 다들 한가지씩은 가지고 산다는 점입니다. 문제, 문제, 문제, 우리 삶을  뒤덮고 있는 이 골치 아픈 인생의 문제들을 우리는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2.

   오늘 본문에 의하면 어떤 왕의 신하가 등장합니다. 왕의 신하라면 오늘로 말하면 꽤 신분이 높은 최고위 공무원인 셈인데, 그에게 크고 다급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들이 병을 앓고 있었는데 거의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더라도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직면한겁니다. 그는 가버나움에 살았지만, 예수님이 갈릴리 가나에 오셨다는 소문을 듣고 급한 마음에 먼 거리를 단숨에 달려온 것입니다. “제발 가버나움으로 오셔서 제 아들을 살려주십시오.”하고 간청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에게 다소 야박하게 들리는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들은 표징이나 기이한 일들을 보지 않고는 결코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 야박한 말이기도 하지만 지금 상황에 맞지도 않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주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든 아랑곳 하지 않고, 아들이 죽기 전에 속히 내려 와달라고 간절하게 애원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돌아가거라, 네 아들이 살 것이다!”  

   왕의 신하는 이 말씀을 믿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에 아들이 회복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그와 온 집안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아들의 중한 병, 정말 큰 문제, 다급하고 심각한 문제, 발을 동동 굴렀던 그 문제는 어떻게 해결되었죠? 그 문제는 어디로 사라져 버렸을까요? 오늘 말씀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그 단서를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행동을 눈여겨 보시기 바랍니다. 사실 예수님은 문제를 해결 해 달라고 요청한 사람의 말대로 그를 쫓아가서 기적같은 능력으로 그 문제를 해결해 준게  아닙니다. 48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표징이나 기이한 일들을 보지 않고는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런 후에 표징이나 기이한 일들을 보여주는 기적같은 방식이 아닌, 전혀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 전혀 다른 방식이 무엇이었을까요? ‘믿음의 방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래, 가버나움으로 빨리가자. 가서 내가 손을 얹고 안수하여 고쳐주마라고 하지 않고 가라, 네 아들이 살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대부분, ‘아이, 선생님 왜 이러십니까, 그러지 마시고 제발 저와 같이 가셔서 제 아들 좀 고쳐주세요라고 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그냥  그 말씀을 듣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면 지금 이 사람의 마음의 상태는 어떤 겁니까? ‘가라, 네 아들이 살 것이다라는 말씀을 진짜로 믿은 겁니다. 이 사람의 믿음의 방식이 이 문제를 해결한 겁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고쳐주셨다기보다, 이 사람의 믿음이 그 문제를 해결한 겁니다.

   예수님은 종종 기적 같은 자신의 능력으로 병자들을 고치기도 하셨지만, 사실은 더 많은 경우, 문제와 씨름하는 사람의 믿음을 통해서, 다시 말해서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의 태도와 사고방식을  바꾸어 줌으로 문제를 해결한 경우가 훨씬 더 많았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말씀을 얼마나 많이 하셨습니까? 내가 아니라 네 믿음이, 내 능력이 아니라 문제를 바라보는 너의 태도가 네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믿으면 무슨 일이든 가능하다는 기복적이고 맹목적인 믿음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떻게 믿느냐가 우리 삶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저는 선생님, 제 아들을 고쳐주십시오.” “가라, 네 아들이 살 것이다.”라는 오늘의 말씀을 이렇게 번역하고 싶습니다. “주님, 제가 겪는 문제가 너무 힙듭니다. 해결해 주십시오.” “걱정마라, 그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더 업그레이드 된 버젼으로 번역한다면, “주님, 제 인생은 problem, problem, 온통 problem으로  가득합니다.” 그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니다. 네 인생은 no problem, no problem, no problem이다.” 우리가 비록 problem 많은 삶을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향해 no problem이라고 선언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믿고 우리 삶의 자리로 돌아간다면 거기서부터 기적이 시작됩니다.


   3.

   사실 우리 삶은 어렵습니다. 현실적으로 간단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겪고 있는 문제가 너무 힘들고 난감해서 어떻게 풀어야할지 모를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왕의 신하처럼 절박한 심정으로 주님을 찾습니다. 표적과 이사를 기대하며, 기적같은 능력으로 내 문제를 해결해 주시길 기대하며 주님께 애원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기적을 베풀어서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문제가 아님을 믿고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문제를 제거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있지만 그것을 문제 삼지 말고 가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문제 상황을 바꿔 주시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 생각, 마음의 태도를 바꾸란  것이죠. 현실에서 이런 말씀을 적용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문제는 문제 삼는 사람에게 점점 더 문제가 됩니다. 문제를 너무 문제로 여기는 그 태도가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들곤 합니다. 건강 문제보다 건강에 대한 염려의 문제가 더 건강에 좋지 않다고 하죠?

   우리가 problem을 안고 주님께 나아가면 주님은 no problem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no problem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이런 뜻입니다. “얘야, 힘들지? 나도 잘 안다. 네 고통, 네 눈물, 그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안다. 하지만 인생은 어려움과 함께 가는 거란다. 그러니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한 가지다. 고난 속에서 고난의 노예가 되지 말고, 문제 속에서 문제에 함몰되지 말고, 나를 믿고 자유하거라.” 주님의 이 ‘no problem선언을 믿으실 수 있길 바랍니다.    


   4.

   지난 주말 Lancaster 극장에서 공연한 <Jesus>를 보고왔는데, 그 공연을 보면서 새삼 예수님의 생애에 일관된 특징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이 수 많은 사람들이 가진 문제들을 해결해 주시는 장면들이 펼쳐집니다. 그런데 그것은 한마디로 problemno problem으로 바꾸는 일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불결하다고 여겨져서 사회로부터 격리된 사람들, ‘중풍병자, 나병환자, 소경과 앉은뱅이, 귀신들린 사람들’, 그야말로 문제 가득한 사람들의 문제가 사라졌습니다.

   유대인들이 손가락질 했던 세리와 창녀들을 향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 돌에 맞아 죽기 직전에 놓인 여인을 향해, 모두에게 따돌림 당해 외롭게 살아가는 삭개오를 향해, 그 문제 많은 사람들을 향해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No problem이라고 선언하신 것 아닙니까? 또 우리가 씨름하는 외부의 문제들도 문제지만, 사실 나 자신의 문제들, 내면의 문제들, 나라는 존재가 가진 문제들은 또 얼마나 어려운 문제들입니까? 

   저는 오늘 종려주일이지만 부활절 메시지를 미리 드리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셨습니다. 죽음은 모든 문제들의 최상급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문제 가운데 가장 심각한 문제,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바로 죽음의 문제입니다. 죽음 앞에서 그 누가 당황하지 않고, 그 누가 절망하지 않으며, 그 누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께서 죽음을 딛고 일어나셨습니다. 모든 문제들의 최상급인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셨다는 것이 부활의 의미입니다. 따라서 주님은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인간의 가장 큰 problem 을 향해 no problem이라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 신앙이란 수 많은 문제와 씨름하며 problem많은 인생을 살아갈지라도 no problem을 굳게 믿고 살아가는 신앙입니다. 또한 내 자신이 문제 많은 존재일지라도 우리를 향해 no problem이라고 선언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의 문제 많은 삶을 향해,  그리고 문제 많은 우리 자신을 향해 no problem이라고 선언하시는 부활하신 주님의 음성을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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